자동차 산업의 후발주자로 여겨졌던 국가들이 전기차 중심의 신산업 육성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이 촉발한 산업환경 변화에 즈음해 신성장 동력 확보전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복안이다. 이들은 내수 잠재력, 완성차 생산 경험, 유리한 교역 환경 등을 홍보하면서, 관련 산업 경쟁력을 보유한 국가와의 협력에도 열린 자세로 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세안(ASEAN) 국가들이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인도네시아의 가능성은 남다르다. 세계 4위 인구 대국이 만들어 낸 내수시장, 경쟁력 있는 비용 구조, 수출에 유리한 환경,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니켈 매장량 세계 1위라는 환경 조건은 전동화 모빌리티의 미래에 사활을 건 기업이나 국가가 결코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글로벌 기업에 러브콜을 보내며 신산업 육성을 도모하고 있다. 이에 전자제품 위탁생산(EMS) 세계 1위인 대만 폭스콘이 80억달러 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장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 배터리 기업 CATL과 아세안 자동차 시장의 강자인 토요타도 못지않은 투자를 진행 중이다. 한국 대표 기업인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도 전기차 및 배터리 현지 생산을 통해 인도네시아 산업 전환에 앞장서는 중이다.
인도네시아와는 물론이고 한국-아세안 국가간 협력 관계를 더욱 굳건히 하려면 양국간의 오랜 외교사나 기업의 의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대상국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확보하고 향후 협력 범위를 더욱 확장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이해에 기초한 관계보다는 장기적인 관계 형성 중심의 활동이 요구된다. 그러한 면에서 공공부문 주도의 공적개발원조(ODA)는 인도네시아와의 강건한 관계 형성에 필요한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수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한자연)은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인도네시아의 산업전환을 돕기 위해 지난해 2월 인도네시아 자동차연구소와 전기차 산업기술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ODA의 일환으로 '인도네시아 온실가스 감축용 태양광 충전 e-vehicle 시스템 구축' 사업을 통해 모빌리티 산업 교류 확대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한자연이 주관하는 이 사업은 2026년까지 현지 관공서를 중심으로 복합 충전소를 설치·운영하고, 수도 자카르타에 보급된 차량의 수리를 위한 전문 AS 체제 및 연구개발 등 전문인력 양성이 가능한 종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주 목표다. 즉, 인도네시아 현지에 e-vehicle 산업의 선순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올해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급망·디지털·기후변화에 초점을 둔 ODA 추진 방향을 정립한 상황에서 아세안 국가들 중 전기차 부문에서 높은 잠재력을 보유한 인도네시아와의 협력 중요성은 재차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8일 한국-인도네시아 양국 정상간 회담에서도 전기차 생태계 조성 협력 내용을 포함해 배터리, 스마트시티 등 다양한 미래산업 분야에 대해 적극 협력하자는 논의가 이뤄졌으며 양국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는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 기업에는 판로 확대의 기회가, 인도네시아 국민에게는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드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양국 공동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ODA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나승식 한국자동차연구원 원장장 ssna@katech.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