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면 수박은 달콤함과 시원함으로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다. 하지만 정치용어로써 수박은 긍정적이지 않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를 뜻하는 멸칭이다. 근래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자들이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당내 정치인들을 비판할 때 쓰인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의 일이다. 2021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청래 의원은 “절에 들어가지 않아도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지적을 했다. 문제는 정 의원의 발언에 들어간 '봉이 김선달'이라는 표현이었다. 이는 팔만대장경으로 유명한 합천 해인사를 향한 말이었지만 결국 일부 사찰이 통행료를 강제로 걷어가고 있다는 의미였다.
후폭풍은 상당했다. 조계종의 반발이 극심했다. 사건 초기 정 의원은 사과하지 않았다. 이후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재명 후보와 송영길 당대표 등이 나서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당사자가 사과하지 않은 탓에 사태는 오히려 심각해졌다. 정 의원은 등 떠밀리듯 조계사에 나타났지만 불교계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교계에서는 '소신공양'까지 언급했다. 소신공양이란 부처에게 공양하기 위해 자기 몸을 불사르는 것으로 결국 분신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는 이후 통행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찰이 문화재 관람료 일부를 감면할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감면액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제출해 통과시켰다. 그러면서 정 의원과 불교의 갈등도 사실상 종료됐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민주당은 대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이후 정 의원은 지난해 열린 전당대회에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재명을 지키겠다'고 외쳤고 결국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정 의원은 현재 이른바 '친명(친 이재명)'의 대표주자로 평가받으며 이 대표 지지자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다.
반면에 현재 대표적인 수박이라고 평가받는 이원욱 의원은 당시 '봉이 김선달' 사태를 수습하고자 전국 사찰을 뛰어다녔고 결국 스님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돌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대선 패배 이후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여러 차례 비판해 결국 이 대표 지지자들로부터 수박으로 낙인찍혔다.
이 대표는 여전히 민주당의 대표 정치인 중 하나다. 대선 후보에서 당대표로 신분만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샌가 바뀌어버린 주변인들에 대한 평가는 다소 당혹감을 준다. 정치가 비정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기억을 잃은 탓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누가 수박인지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수박과 박수의 차이는 기호 1번과 기호 2번의 차이보다 작다.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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