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취약한 한국 반도체 설계(팹리스) 산업 도약의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반도체 업계 첫 유니콘 기업으로 주목 받는 파두나 사피온·퓨리오사AI·리벨리온·딥엑스 등 인공지능(AI) 반도체 회사 성장에 주목해야합니다.”
정덕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석좌교수는 “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우리나라 점유율은 1%, 시스템 반도체 점유율은 3%에 불과하고 세계 팹리스 톱10 기업 중에 한국 기업은 전무하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정 교수는 반도체 분야 세계적인 석학이다. 세계 전기전자공학회(IEEE)의 '도널드 O. 페더슨상' 2024년 수상자로 지명됐다. 반도체 회로설계 분야에서 평생 뛰어난 업적을 기록한 연구자에 주어지는 상으로 한국인 첫 수상자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팹리스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우선 순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가총액 1조원 이상 기업이 LX세미콘 밖에 없는 국내 팹리스 현실을 고려하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가 손꼽은 분야는 AI다. 신기술 발전으로 아직 독점 사업자가 가려지지 않은 AI반도체 시장에서 팹리스 산업을 도약시킬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취지다.
가트너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AI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326억달러(약 43조2797억원)에서 2030년 1179억달러(약 156조5240억원)로 8년 만에 세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챗GPT 등 생성형 AI 서비스 본격화에 AI 반도체 시장도 폭발적 성장이 예상된다. AI 구현에 최적화된 뉴로모픽 반도체 시장 역시 연평균 24% 성장해 2027년 100억달러(약 13조273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학습용 시장은 이미 80% 안팎을 엔비디아가 차지했다. 그러나 AI 추론 시장에는 기회가 분명하다는 것이 정 교수 판단이다.
팹리스 산업 역시 생태계가 중요하다. 정 교수는 탄탄한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업계 고충부터 해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인력 수급 문제, 투·융자 조달 문제와 해외 진출 난항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전문인력 양성 부족과 대기업 선호 문화로 팹리스 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있고 팹리스 특성상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려 투·융자 유치도 쉽지 않다”며 “국내 대기업 위주 납품 문화 역시 팹리스 기업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미국 실리콘밸리 생태계나 대만반도체연구센터(TSRI) 등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 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해외 선진 사례를 참고, 우수 인력이 가고 싶은 스타 팹리스를 육성하는 것도 방법으로 제시했다.
정부의 적극적 지원 행보도 시급하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세금 감면, 투자 지원, 팹리스 펀드 확대로 팹리스 성장을 뒷받침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정 교수는 “기술력 있는 팹리스 스타트업을 투자·인수하는 등 대기업의 협력도 팹리스 산업 성장에 필요하다”며 “정부는 장기적인 정책 지원이 이뤄지도록 단기적 정책을 지양하고 팹리스 기업은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해 안정적인 경영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진 기자 trut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