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소비 변화에 맞춰 가계통신비 개념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행 가계통신비 통계는 통신요금에만 집중돼 급증하는 가계 디지털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모적 통신비 인하 논쟁을 막기 위해서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디지털 콘텐츠와 디바이스 비용까지 포함한 '가계디지털비' 중심의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다.
20일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가계통신비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곽정호 호서대 교수는 “디지털 이용 형태 변화를 고려한 새로운 가계 지출 집계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곽 교수는 “2011년 디지털 관련 지출의 79.7%를 차지하던 통신서비스 비중이 지난해 55.5%로 떨어진 반면, OTT·음악·게임 이용료는 꾸준히 증가 추세”라며 “가계 디지털 생활에서 통신서비스보다 콘텐츠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통신요금은 2011년 9만4881원에서 지난해 8만2103원으로 20%가량 줄었다. 전체 디지털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2.1%에서 46.4%로 24.2%포인트(p) 감소했다. 반면 콘텐츠 이용료는 같은 기간 8배 급증하며 전체의 12.5%를 차지했다.
스마트폰과 워치·태블릿 등 디지털기기 비용 역시 월 할부금 기준으로 160% 늘어난 4만8555원까지 치솟으며 전체에서 27.4%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지난해 가계통신비는 12만8000원이지만 콘텐츠 포함 디지털 비용은 17만7000원에 달했다.
곽 교수는 “스마트폰 보급이 본격화된 2011년 이후 음성 중심에서 데이터 중심 콘텐츠 소비로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가계에서 부담하는 전체 디지털 비용도 16% 증가했다”면서 “가계통신 부담 완화를 위해서는 통신요금에 국한된 가계통신비가 아닌 OTT 구독료 등 콘텐츠 비용 전체를 아우르는 디지털 비용 중심의 절감 대책을 짜야한다”고 말했다.
전세계 주요국과 비교해도 통신요금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변재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전문위원은 “지난해 국내 가계통신요금은 77달러였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9개국 중 8번째로 낮은 수준으로 오히려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 “반면 스마트폰 포함 통신장비 지출은 미국의 2배, 일본의 5배로, 가계통신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주요국 평균인 6.9%를 크게 상회하는 22.3%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통신으로 한정됐던 분류 체계를 정보통신으로 확대하고 오락, 문화 일부도 편입시킨 UN의 COICOP 기준에 맞춰 2019년 개정한 국내 'COICOP-K' 분류 기준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진석 통계청 가계수지동향과장은 “내년부터 새로운 COICOP 기준에 맞는 통계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디지털 서비스를 가계통신비로 포함하기에 앞서 구체적 범주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곽규태 순천향대 교수는 “확장된 가계통신비 구성 항목 중 디지털 콘텐츠 비용의 경우 오락·문화비와 연계할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통신 서비스와 무관한 웹툰 등도 통계에 포함할 지 여부에 대해서는 문체부 등 유관부처와 협업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석현 서울YMCA 시민중계실장도 “그동안 통신비 인하 중심으로 가계 지출 경감 방안이 모색돼 왔지만 앞으로는 급격히 증가하는 디지털 기기 및 콘텐츠 비용을 포괄하는 가계 디지털 비용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짚었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