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유럽 50대 연기금 중 하나이자 지속가능한 임팩트 투자를 이끄는 PensionDanmark, PFA를 비롯한 투자자 컨소시엄은 세계 최초의 인공 에너지 섬인 VindØ('풍력 섬') 계획에 5000만 유로 이상의 투자를 결정한 바 있다. 덴마크 정부의 기후 행동 계획의 핵심이었던 해당 프로젝트는 2030년까지 3GW의 해상 풍력 발전 용량을 갖춘 뒤, 궁극적으로는 전통적 해상 풍력 발전소 25개에 달하는 규모인 10GW의 해상 풍력을 제공하게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현재 핵심 투자 기업 중 하나인 PFA는 덴마크 해상 풍력 입찰 시기가 돌아왔으나 정치적 변화 및 시장의 침체 앞에 해당 프로젝트에의 투자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Making money moral의 저자 Saadia Madsbjerg는 더 나은 사회 변화를 이끌며 지속가능성을 논하는 이같은 임팩트 투자가 급격한 증가 추세에 있음은 환영할만한 변화이나 투자자와 기업 모두 관련 현장 경험이 부족한 점이 지속적으로 위험을 관리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지적했다.
기후 변화가 이미 현실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 (Deloitte)가 발표한 MZ세대 대상의 '2023 변화의 물결'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중 60%가 환경 변화에 대해 불안을 경험하고 있으며, 고용 기업의 관련 대처 여부 및 그에 대한 평가가 이직 요소로서 적극적으로 고려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관련 투자 기회는 미래 수익성과 해당 투자 가치를 투자자와 기업 모두에게 지속적으로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단서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필자는 이와 관련해 투자자와 기업이 마주하는 표현 '지속가능성'이 서로 다르게 인식되고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데에서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임팩트 투자사들은 투자의 기회를 소외된 시장, 건강 및 웰빙, 교육 및 기술과 같은 사회적 테마를 렌즈로 사용해 식별하나 개개인 투자자들은 작은 일을 통해 실천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또한 조직과 기관 내부의 사람들은 제품, 정책을 통해 대규모로 실행 가능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가시적이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해가 있는 것처럼 오랜 시간 이야기해 왔다. '지속 가능한 가치', '지속 가능성 제안', '진정한 지속 가능성 달성', '지속 가능성의 영향력' 등. 하지만 개인은 자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 느낄 수 있는 작고 개인적인 실천인 재활용, 식물성 식단, 현지 쇼핑, 노동자 권리에 대해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규모로 이야기할 뿐 해당 표현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곧 대규모 지속가능성의 영향력에 관심이 있는 조직이라면 가능한 것을 집단적으로 형성하는 개인의 관행과 신념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즉, 지속가능성은 글로벌 규모에서 다룰 수 있지만, 개별 실천의 복잡성은 인간 규모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질적 연구 전문가인 Lee Ryan은 2020년 '지속가능성' 연구 발표를 통해 전문가들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도와 행동의 차이를 언급할 수 있지만 연구에 참여한 개개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느낄 뿐 '지속가능성'이라는 거대한 담론의 표현 앞에 작아지거나 죄책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렸다.
나아가 기업은 다양한 기업 활동 내 지속가능성의 언급에 있어 밝고 긍정적인 미래에만 집중해 표현하는 경향이 있으나 현실에서의 개개인은 낙관적이기를 원하나 암울한 미래를 바라보며 일종의 슬픔을 경험하고 있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자녀가 맞이할 미래의 자연환경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낙관적인 기업의 표어는 해결책의 일부가 되길 원하는 개인 투자자들의 희망과 현재의 상태마저 유지되지 않을 거라는 깨달음 모두를 자극해 관련 투자에 대해 더욱 복잡하고 까다롭게 느끼게 만들 수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속가능성은 세계적 과제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속가능성과 지속불가능성을 동시에 떠올리며 '지속'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쩌면 '생존 가능성'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채택하고 적응해 왔다. 적자생존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지속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투자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실천이라면 앞으로는 투자사들, 기업은 개개인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생존 가능성'이라는 키워드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