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디지털 권리장전을 내놓은 것은 글로벌 '룰 세팅'을 통해 디지털 신질서를 주도하기 위해서다. 디지털 심화 시대에 맞는 규범을 주도적으로 제시해 글로벌 표준 정립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기술 주도권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우리나라는 AI를 넘어 디지털 이슈 전반을 포괄하면서 전세계 시민이 함께 추구해야 할 글로벌 비전을 제시해 차별화를 꾀했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은 25일 브리핑에서 “AI·디지털 규범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이번 디지털 권리장전을 통해 글로벌 디지털 규범 논의를 주도해 나갈 계획”이라며 “UN, OECD 등 국제기구뿐 아니라 미국·영국 주도의 AI·디지털 규범, 거버넌스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세계 주요국은 인공지능(AI)을 포함한 디지털 관련 헌장·선언을 경쟁적으로 발표하며 규범 패권 경쟁에 돌입했다. 최근 생성형 AI 등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산업 생태계와 노동 환경, 저작권 분야에 있어 급격한 가치 변화를 일으키면서 자국 입장을 새로운 디지털 규범에 반영하기 위한 움직임이 빨라졌다.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지난 18일(현지시간)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AI 7대 원칙'을 발표했다. 빅테크가 폐쇄적 플랫폼 안에서 기술, 데이터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고, AI 개발자 책임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영국은 오는 11월 AI 안전과 관련한 글로벌 정상회의를 열고 AI 규제 주도권 확보에 속도를 낸다. 지난해 7월에는 디지털 전환에 따른 산업적 측면에서 영향을 다룬 '디지털 규제 원칙'도 제시했다. 유럽연합(EU) 탈퇴 후 선도적 디지털 규제 체제 구축을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공 들이는 모양새다.
미국도 이에 맞서 지난해 10월 AI 권리장전 청사진을 공개했다. 미국 정부 차원에서 AI 관련 인권 보호 원칙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자동화 시스템 구축과 사용 및 보급을 위해 필요한 5가지 원칙으로 구성됐다. EU 역시 빅테크 대응을 위해 지난해 '디지털 권리·원칙에 관한 선언문' 초안을 발표했다.
정부도 디지털 권리장전을 기반으로 디지털 관련 국제기구 설립까지 주도해 디지털 선도국가로 위상을 확고히 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우선 국제사회 전파를 위해 내달 16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UN GDC 아태지역 회의에서 디지털 권리장전을 발표한다. 또 11월 영국에서 열리는 AI 윤리원칙 행사에도 참석해 글로벌 공감대 형성을 도모하고, 같은 달 OECD 디지털 권리 워크숍에서도 관련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박 차관은 “디지털 보편·모범적 사례에 대한 발표 주체가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해 경제성장 이룬 대한민국이라는 점이 전세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외교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디지털 관련 국제기구 신설을 주도하기 위한 장기적 로드맵을 그려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
-
박준호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