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이공계 전문가 없는 행정부, 첨단 산업 다 죽는다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

인사혁신처가 발간한 '2023 공공부문 통합인사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부처 공무원 중 '이공계 기술직'은 24.4%에 불과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7.7%로, 되레 더 적어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이공계 기술직 고위 공무원' 역시 전체의 24.8%로 4분의 1을 넘기지 못했다. 중앙 부처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6.1%, 통일부 4.0%, 기획재정부 3.6% 등 한 자릿수 대도 나왔고, 심지어 국가 미래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책임지는 교육부에서는 고위 공무원 56명 중 이공계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도 모수(母數)가 비교적 적은 편이었으나 역시 이공계 출신 고위 공무원은 '0명'이었다.

공무원 80%가 인문계 행정직. 우리나라 공직사회의 민낯이다. 공직자의 80% 가량이 이공계 출신인 중국, 50% 이상이 기술고시 출신 전문가인 일본, 40% 가까이 기술직인 미국 등과 비교하면 더욱 뒤처진 현실이다.

위성·반도체·원자력·바이오 등 우리나라의 첨단 과학기술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일신(一新)하고 발전하지만, 정작 관련 제도·예산을 집행하는 담당 공무원은 업계 동향과 산업 구조에 무지한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중앙 정부의 정책 기조와 주요 산업의 기술 추세를 파악하기도 벅찬 데다, 과기정통부 및 산업통상자원부 등 주요 유관 부처 또한 '진정성 있는 관심'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전문가 없는 행정부의 근시안적 정책, 기술 산업과 행정 방향의 불협화음! 이 오랜 병폐를 혁파하고자, 필자는 '제21대 국회 유일 과학기술인 출신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서 지난해 1월 '과학기술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책적 사안에 대한 행정 조직의 의사결정에 '과학기술 전문가의 검토'를 반영하도록, 관련 자문기구를 설치하고 국가의 지원 근거를 명문화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중앙과 지방의 기술 인식 격차를 좁히는 가교 역할을 함으로써,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중장기 정책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그해 5월 본회의를 통과, 이윽고 지엄한 국법으로 공포되었음에도 1년이 넘게 시행되지 않고 있다. 주무 부처에서 구체적 실행 계획을 보고하거나, 진행 로드맵을 제시한 적도 없다. 민의를 수렴해 법을 만드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이미 공포까지 된 법안의 시행 여부를 행정부 조직에 직접 확인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이공계 기술직 공무원 현황(출처:인사혁신처)
이공계 기술직 공무원 현황(출처:인사혁신처)

이처럼 공무원들은 개혁법안은 뒤로한 채, 여전히 '위원회 장막' 뒤에서 복지부동하고 있다. 산·학·관·연 전문가 의견과 조언을 행정에 반영한다는 미명하에 탁상공론만 이어가는 현실이다. 활동이라고는 상·하반기 한두 번 회의에다 위원에게 교통비·회의비 지급에 그치고, 실제론 의견을 정책에 거의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고서는 정책 과오로 문책을 받을 땐 위원회 핑계를 대기 일쑤다.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조사 결과, 문재인 정부 당시 중앙행정기관 위원회는 620여 개, 지방자치단체 위원회는 2만 8000여개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효성 없는 '전시성 행정'의 표본이자 공무원의 '정책 실패 방패막이' 노릇만 하는, 유명무실한 위원회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

태생적으로 자원이 풍부하지 않았던 우리나라는 우수 인재 육성으로 기술 강국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역사의 증명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는 까마득한 봉건시대의 사농공상(士農工商) 이념 질서에 그대로 매몰돼 있는 것 같다. 두 가지 예만 봐도 그러하다.

첫째, 산업표준화법에 근거를 둔 '국가 품질 명장'이 대표적으로, 우리나라를 산업 국가로 발전시킨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인 '공업 분야 명장'에 대한 실질적 지원과 예우는 심히 열악한 상황이다. 첨단 기술로 국력을 기른 나라에서, 혼신을 바친 기술자를 홀대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둘째, 다목적 실용 위성 '아리랑', 정지 궤도 위성 '천리안', 차세대 중형 위성 '국토위성 1호' 등 우수 위성이 연이어 발사되었으나, 현재 우리 행정 조직에는 위성 정보 활용과 관련해 공무원들을 교육시킬 근거법도 없다. '국토 관리 및 재해·재난 등 민생 분야' 공간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전무한 실정이다.

올 상반기 야권의 정쟁 소재로 부상했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괴담, 양평 고속도로 논란, 양곡관리법 강행 처리'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위성 자료가 확보되어 있음에도, 관련 기관에서는 주요 정보를 국회 등에 보고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전방위적으로 활용 가치가 높은 위성 영상이 국정 반영도, 민간 공개도 되지 않은 채 '행정 조직의 보수적 안일함'으로 사장되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내실이 탄탄한 기술 강국으로서,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각국을 선도하려면 정부 차원에서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을 제대로 집행, 과학기술 인재 양성 및 산업 육성을 더욱 장려해야 한다. 나아가 집행된 예산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투입됐고 관련 분야 산업 기술 발달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사용 실태에 대한 추적 관찰과 사후 관리'가 필수다. 행정은 물론 입법기관도 마찬가지다. 정당인, 법조인, 행정가 위주의 '경조사 정치'만 고수하다가는 정책과 민심의 괴리만 심화하기 마련이다. '이공계 전문가 없는 행정'이 첨단 과학기술 산업을 무너뜨리고, '이공계 전문가 없는 정치'가 현장을 도외시하여 민생을 망치는 법.

앞으로 윤석열 정부가 과학기술 전문가를 중용하고 지원함으로써, '기술 강국' 대한민국을 '민생 부국' '경제 대국'으로 도약시킬 것을 기대한다. 정쟁 일변도로 기울어가는 우리 정치에 국민이 바라는 것 역시, 현장과 팩트 중심의 생산적인 의정활동이 아니겠는가.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 843mhjo@gmail.com

〈필자〉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은 제21대 국회 유일의 과학기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다. 국내 지구관측 위성 정보 분야 1호 박사로, 40여년간 지구관측 위성정보 기반 연구와 실무를 경험했다. 원격탐사 및 공간정보 분야 교육과 인재 양성에 매진하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우주소위 위원장, 대통령 소속 국가우주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위성 활용 분야의 오랜 경험을 토대로 대선 선대본부에서 우주·과학·ICT융합정책본부장직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