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안성은 온 나라 물산의 집결지였을 뿐만 아니라 유기(놋그릇)의 고장이기도 했다. 제사를 중히 여겼던 우리의 조상은 질 좋고 생김새도 아담한 안성유기를 유독 찾았다. 한편 유기를 만드는 수공업자들은 세금대신 방납(防納)이라고 하여 정해진 물품을 조정에 바쳤는 데, 여기서 방납중개인과 지방관리들의 착취가 심했다. 이에 조정은 대동법을 통해 방납을 폐지하고 수공업자에게 직접 맞춤 주문해 사들이는 제도를 실시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유기가 안성맞춤(정확히는 “안성맞춤유기”)이다.
요즘 플랫폼을 통해 안 되는 것이 없다. 직장을 찾거나, 음식을 주문하거나, 택시도 뚝딱 불러준다. 플랫폼의 특징을 민첩성, 정확성으로 본다면 한민족의 DNA와 다를 바 없다. M&A는 국가별 독특한 관행을 갖고 있다. M&A역사가 수백 년 앞선 선진국의 경우 M&A플랫폼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반면 글로벌 IT강국 대한민국은 발로 뛰는 M&A가 성행한다. 국내M&A시장은 소수의 정보독점, 폐쇄된 시장구조의 전형적 아날로그 행태다.
한국 M&A시장을 대표하는 단어는 '아름아름'일 것이다. 아름이란 두 팔을 벌려 품을 수 있는 범위로 매도자는 최대한 쉬쉬하며 주변에 거래를 의뢰하지만 소문은 삽시간에 퍼진다. 특히 상장사의 경우 불과 보름이면 전혀 엉뚱한 중개인의 전화를 받을 것이다. 제 값 받기도 어렵다. 한정된 수요로 경쟁을 해치고 흥행을 유도할 수 없다. 성사율도 매우 떨어진다. 시장소문을 쫓는 M&A브로커가 이중, 삼중 개입하며 선불을 요구하고 막상 당사자를 만나지도 못한다. 정보독점도 심각하다. 회계법인, 로펌, M&A부띠끄 등 소수의 정보 독점으로 시장접근이 매우 까다롭다.
M&A플랫폼은 말 그대로 기업을 사고파는 플랫폼이다. 얼핏 회사노출을 우려할 수 있지만 정반대다. 앞서 아름이라는 표현도 썼지만 개인간 정보교류에 의한 M&A는 시장소문을 피할 수 없다. 반면 비실명, SW알고리즘으로 움직이는 플랫폼은 아예 정보유출자체가 불가능하다. 정보독점도 해소할 수 있다. M&A당사자의 직접 참여로 탈 중개화가 실현되고 비용절감, 정보비대칭도 해소할 수 있다. M&A는 회사 내 경영자원을 분해하고 외부자원을 결합하는 작업이다. 즉, 산업의 고도화를 실현하는 것으로 특히 한국의 경우 구조적 장기침체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의 꽉 막힌 구조로는 답을 찾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M&A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산업의 허리가 두동강난다. 심각한 조로(早老)현상과 베이비부머세대의 은퇴, 자식들은 가업승계보다 건물주가 되길 원한다.
인간의 앞 발이 손으로 바뀐 극적인 변화 이후 처음 탄생한 것이 도구다. 인간은 불을 사용하며 익힌 고기를 먹게 되었고 말을 하게 된다. 과학기술도 마찬가지로 현대는 플랫폼을 발돋움 삼아 모든 거래가 인터넷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플랫폼경제시대이다. 흔히 덜 쓰고, 많이 얻는 것을 경영이라 한다면 마른수건 짜기가 꼭 답은 아닐 것이다. 호모디지털프스(Homo Digital Life)시대 안성맞춤의 도구는 플랫폼이다.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필자〉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적 정보통신기술(ICT)경영인이며 M&A 전문가다. 창업기업의 상장 후 50여건의 투자와 M&A를 성사시켰다. 전 바른전자 그룹회장으로 시가총액 1조원의 벤처신화를 이루었다.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대학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현재 언택트 M&A플랫폼 '피봇브릿지' 대표 컨설턴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