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과학자 양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우리가 원하는 의사과학자는 어떤 모습일지, 누가 어떻게 양성해야 할지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그 논쟁의 한복판에 있다.
필자는 1992년 의대에 입학, 의사과학자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의대 기초의학교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박사후 연구를 수행하며 의사과학자로 성장했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의대 기초의학 교수의 시각으로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과 KAIST 의과학대학원 출발을 봤다. 2011년부터는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로 의사과학자 양성 절반의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다. 이를 기반으로 더 큰 성공을 위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의사과학자 양성 근간은 의대 기초의학교실이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기초의학교실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2002년부터 선도의과학연구센터를 통해 매년 수백억원 연구비를 기초의학을 살리기 위해 투입했지만 기초의학을 지원하는 젊은 의사는 계속 감소해 현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2005년 의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며 미국식 'MD-PhD' 과정도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지 못했고, 제도만 도입하고 교육 개혁없이 기존 임상 위주 의대 교육을 그대로 했다.연구중심병원사업을 비롯한 다수의 병원 주도 연구사업도 추진했지만, 오히려 임상 응용 위주 연구개발(R&D) 문화가 심화됐다. 의대에 입학할 때 연구를 꿈꾸던 학생조차 졸업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임상의사가 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지난 30년간 확인한 것은 의대의 경직된 의학 교육과 임상의사 양성 위주 문화 혁신없이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의대가 없는 KAIST는 2006년 의과학대학원을 설립하며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의대를 마치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젊은 의사에게 분자 및 세포를 근간으로 한 첨단 생명과학 연구를 접목했다.
당시 의학계의 비판적 예상과는 달리 큰 성공을 거뒀다. 연구중심 환경, 우수한 교수진과 동료들을 바탕으로 젊은 의사들은 연구에 몰입했으며 과학자로 거듭났다.지난 16년간 200명 이상 의사과학자가 양성됐고, 뛰어난 연구 업적들은 세계 최고 수준 학술지에 발표됐다.
다수의 스타트업이 교수와 학생에 의해 창업됐다. 의학과 생명과학의 융합으로 거둔 성공은 의과학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며 의학, 그리고 생명과학계 모두에게 화두를 던졌다. 꺼져가던 의사과학자 양성의 불씨를 되살렸고, 연세의대와 서울의대에서 의과학대학원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광주과학기술원(GIST), 포항공대, 울산과학기술원(UNIST)도 의과학대학원을 설립했다.
의과학대학원이 생명과학분야에서 의사과학자 양성에 성공했지만,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신소재 등 다양한 공학 분야와 의학을 접목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의사공학자 양성에는 실패했다.
실패 이유를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결론은 단순했다. 기존 의학교육을 받은 의사에게 공학 접목은 큰 난관이었다. 의사공학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공학 기반 의학교육이 필요했다. 의과대학에서부터 전통적인 의학만큼이나 공학과 의학 융합이 미래를 위해 필수적임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 하버드의대는 1970년 기존 의대 과정과 별도로 헬스 사이언스&테크놀로지(HST)라는 공학기반 의대과정을 메사추세츠공대(MIT)와 공동으로 시작했다. 광간섭단층촬영(OCT) 의료 장비를 개발해 안과 시술 안전성을 혁신한 공로로 래스커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황 오리건의대 교수는 대표적인 HST 출신 의사공학자다.일리노이주립대는 2018년 공대 기반 칼-일리노이 의대를 신설했다. 뉴욕대 의대는 2019년 의대 교육과정을 3년으로 줄이고 1년 동안 다양한 공학연구를 접목하는 '센츄리 21' 과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의학교육 혁신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KAIST 도전은 아직 진행형이다. KAIST 역할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KAIST의 DNA는 지난 50년간 반도체, 로봇, 인공위성, AI 등 많은 공학분야에서 혁신을 만들어냈다.
이제 KAIST는 의사공학자 양성을 통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준비를 마쳤다.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과기의전원)을 설립해 의사공학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의사공학자를 꿈꾸는 학사 이상 젊은 이공계 인력을 선발해 4년간 의학·공학 융합교육을 바탕으로 공학적 능력을 갖춘 의사로 양성하고, 이후 4년간 박사과정과 연계해 바이오헬스 산업 인재로 양성하려고 한다.
행정적으로 의대 신설 결정이 마지막으로 남은 고비다. 일차진료의사 양성이 목표인 기존 의대에서는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변화지만, KAIST 과기의전원의 시도는 기존 의대 혁신에도 새로운 마중물이 될 것이다. 매년 100명 의사과학자·의사공학자를 양성할 수 있다면 첨단 백신, 신약 및 의료기기, 디지털 의료 등 미래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우리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과기의전원 신설은 이를 위한 작지만 혁신적인 도전이고, 더 밝은 미래를 향한 우리의 투자다. 과기의전원은 현재 의사 양성 체계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것이며, 젊은 의사들은 공학자로서 신산업을 개척하며 기술을 기반으로 의료를 혁신하는 새로운 직업경로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 혜택은 기술기반 의료시스템과 새로운 성장동력을 함께 갖게 될 우리 사회가 고루 보게 될 것이다. 기존 의대와 제로섬 게임이 아닌 시너지를 일으킬 것이다. 과기의전원을 작은 의대의 신설로 생각하고 반대하는 의료계의 입장이 안타깝다. 이를 풀어낼 수 있는 국가 수준의 지혜와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hailkim@kaist.ac.kr
〈필자〉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연세대 의대와 대학원을 거쳐,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전임강사와 조교수를 역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대에서도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2011년부터 KAIST 의과학대학원에 몸담고 있다. 현재 KAIST 의과학연구센터 소장, 클리닉 원장, 의과학대학원 학과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