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로 시작하자. 양치기소년은 늑대가 왔다는 거짓말로 마을을 수차례 속였다. 늑대가 진짜 왔을 때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피해는 양치기소년의 신뢰상실에 그치지 않았다. 마을은 비싼 양들을 잃었다. 양의 젖과 고기, 치즈를 먹을 기회를 잃었다. 양을 팔아 돈을 벌 기회를 잃었다. 양을 살 때 빌린 대출금을 갚지 못했다. 고깃값 인상 등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었다. 더 큰 문제는 뭘까. 마을에 거짓이 넘치고 진짜마저 믿지 않는 불신이 가득했다.
가짜뉴스는 정치, 경제 등 범죄적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하면 정교한 가짜뉴스를 만들 수 있다. 정보를 조작해 시민이 신뢰하는 뉴스로 포장해 퍼트린다. 왜 없어지지 않는가. 가짜를 믿고 싶은 사람이 있다. 진실보다 이득이 되는지가 중요하다. 가짜를 퍼트리는데 멈추지 않는다. 가짜를 내세워 진짜를 공격한다. 공동체는 분열되고 무너진다.
늑대가 왔는지는 그나마 진실을 알기 쉽다. 가짜뉴스는 그렇지 않다. 진실은 재현하기 어렵고 왜곡되기 싶다. 가짜는 사람의 악의가 더해지면 증폭된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이기도 한다.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기준은 뭘까. 인류 발전사를 보자. 이상과 현실, 신과 인간, 천국과 세속, 선과 악을 나누는 이분법이 지배했다. 대립관계에 있는 것을 통제하거나 배척하는 세상에선 진짜가 중요했고 가짜는 범죄였다. 현대는 이상보다 현실을 중시한다. 천국보다 세속이 중요하다. 선한 자도 악한 면이 있고 악한 자도 선한 면이 있다. 모든 가짜가 나쁜 것은 아니다. '황소머리'라는 예술작품이 된 자전거 안장, 핸들이나 생쥐를 모방한 미키마우스처럼 진짜를 능가하는 가짜가 인정받는 세상이다. 뉴스에선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어미 몇 개를 바꾸고 뉘앙스를 달리하는 것만으로 흔들린다. 어떤 일로 1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어떤 뉴스는 '1억 원이나 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다른 뉴스는 '피해는 겨우 1억 원에 그쳤다'고 한다. 독자가 받는 느낌은 같을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다. 선거를 앞두면 당선을 위한 범죄적 절박감이 있다. 상대 후보를 비방하려고 가짜뉴스를 제조, 유포한다. 검증할 시간이 없으니 효과를 본다. 가짜뉴스를 악용하여 정치적 '팬덤'을 형성한다. 공동체의 가치를 무너뜨린다. 그런 것들이 막아야할 가짜다.
정부는 가짜뉴스 방지책을 마련하고, 허위사실 제조, 유포에 해당하면 정보통신망법, 형법(명예훼손), 공직선거법 위반 등 범죄로 처벌한다. 신뢰성 높은 전문기관을 통하여 '팩트 체크'를 한다. AI를 이용하여 가짜뉴스의 특징, 패턴을 읽고 증빙이 있는지 검증한다. 뉴스플랫폼은 가짜뉴스가 유포되지 않도록 알고리즘을 점검한다. 물론 공동체 이익을 위해 특정 쟁점에 관해 뉴스가 의혹, 이의를 제기하고 해명을 요구할 수 있다. 가짜뉴스 방지책에 진짜뉴스가 갇혀서도 안된다.
가짜뉴스의 가장 큰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가짜뉴스를 제조, 유포한 자일까. 아니다. 언론이다. 독자가 아니라 자신과 광고주가 원하는 것을 뉴스라며 던진다.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독자를 가른다. 언론이 신뢰를 잃은 곳에 가짜뉴스가 싹튼다.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관객과 마주앉아 눈빛을 교환하는 행위예술을 했다. 첫날이다. 그녀가 감았던 눈을 뜨자 중년 남자가 앞에 있었다.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30년 전 헤어진 동료이자 연인 울라이였다. 침묵이 흐르고 눈물이 흘렀다. 손을 맞잡은 장면은 관객의 마음을 적셨다. 가짜뉴스를 막는 방법도 다르지 않다. 언론이 진정성을 갖고 독자의 눈과 입을 응시해야 한다. 독자의 마음을 적실 뉴스를 생산한다면 가짜뉴스가 비집고 들어올 자리는 없다. 디지털시대에는 가짜의 홍수 속에서 진짜를 구해야 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