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후 산업화 드라이브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큰 인구학적 특징은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물리적 이동, 그리고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던 산아제한 운동에 있다고 하겠다. 이제 그렇게 수도권으로 몰려온 이들이 낳은 자녀들이 성인이 되었고 그들의 고향은 당연히 수도권인 경우가 많다. 이제 지방에 연고를 둔 인구는 급격이 줄었고, 수도권 자체가 고향이자 성장의 무대인 경우가 점점 더 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지방경제를 살리는 묘안에 관해 지인과 토론한 적이 있다. 그는 좋은 기업을 지방에 가도록 하는 것보다 좋은 학교를 지방에 분산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좋은 기업을 지방에 유치하려면 좋은 학교가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으로는 자녀를 보낼 좋은 초중등 학교가 지방에 생기더라도 좋은 대학들이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으니, 결국 대학부터는 부모와 떨어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학교는 지방거주시 호소하는 이른바 '불편'사항의 일부일 뿐이다. ktx가 개통되고나서 서울로의 접근성이 급격히 좋아지자 사람들의 거리에 대한 인내심은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버렸다. 필자가 대학1학년때 신도시로 이주하여 편도 2시간 통학을 할 때만 해도, 그럴 수도 있다는 인식이 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직주근접, 학주근접을 선호하는 현상 때문에 통근시간이 편도 한 시간을 넘어가기만해도 멀다는 인식이 예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다. 물론 통학할 때 한 시간 이상 버스나 지하철에서 시달리다 보면 힘들고 지치는 것은 사실이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한 공간감의 변화는 시간의 가치에 대한 변화도 동반했다. 쿠팡이라는 업체가 다음 날 아침까지 배송해주는 모델을 시작했을 때, 유통업계에서는 비용문제로 오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팽배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국면을 거치면서 신속 배달수요가 급증하고 그것을 소비자의 습관으로 정착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쿠팡이 이제는 당일 배송을 시도하는 여러 경쟁 업체들과 우열을 다투고 있지만, 그들 사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는 시장지배자가 되어가고 있다. 전날 저녁먹으면서 딸이 갖고 싶어하는 생일 선물을 물어도, 생일 날 아침에 침대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줄 수 있는 놀라운 속도가 점점 더 당연시되고 있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이 압축되면서 인식의 여유 공간은 갈수록 좁아져 가고, 우리의 조급함은 만족의 잣대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유통업을 바꿔버린 아마존이나 쿠팡의 공통점은 이들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배송최적화 모델에 있어서 최선두에 서있는 기업들이라는 데 있다. 아마존은 자신의 창고관리와 배달최적화를 위해 개발했던 클라우드 시스템을 기업에 판매해 얻는 수익이 이익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는 단계에 이른지 오래다. 쿠팡도 세계 곳곳에 데이터 연구소를 만들어 물류최적화와 소비자 만족도 향상을 연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교통에서의 혁신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최단시간 배차와 고객만족도 극대화를 노리는 우버, 카카오T, 그랩과 같은 업체들의 IT 혁신이 이끌고 있는 중이다. 결국 IT로 인한 시공간 압축은 우리의 감각을 급격히 전환시켰고, 그러한 편의 추구에 걸맞는 생활여건은 도시, 그것도 대도시에서 가능해졌기에 우리는 그 높은 거주비용에도 불구하고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심각해져서 이제는 세계 최악이 되어버린 우리의 인구문제에 대한 답도 결국에는 데이터에 대한 철저한 수집과 리뷰를 통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빠른 것만이, 편리한 것만이 답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는 차분히 읽어볼 때가 됐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