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달 고도화와 함께 플랫폼 기업은 혁신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맞이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쇼핑 등 비대면 생활이 활성화되면서 플랫폼 기업은 사회 모든 영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됐다. 하지만, 사회에 미친 순기능 뿐만 아니라 역기능이 점차 부각되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법적규제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 시장법(DMA), 미국의 반독점 패키지 법안, 우리나라 온라인플랫폼 중개거래 공정화 법 등이 법적규제 목소리가 반영된 법안들이다.
그러나 이런 법적 규제는 '정부규제 확대를 우선하는 정책방안', '규제 필요성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신기술·신산업에 해당하는 온라인 플랫폼에 규제를 곧바로 도입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관련 규제가 폐기됐고 우리나라는 국회에 계류 중이다. 우리나라는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민간 주도의 자율규제체계'를 플랫폼 규제 기조로 방향을 선회했다. 지난해 7월 '디지털 플랫폼 자율기구 법제도TF'를 구성해 실효적인 디지털 플랫폼 자율규제 추진 지원을 위한 자율규제기구 설립·지원 법적 근거 마련 등 법·제도 제반사항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해 8월 범부처가 참여하는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 출범식을 개최해 플랫폼 자율기구 분과별 운영 계획과 자율규제 추진방향 등을 논의했다. 분과별 많은 논의를 거쳐 지난 5월 '플랫폼 자율규제 방안 발표회'를 개최했다.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에는 갑을(오픈마켓, 배달앱)·소비자이용자·데이터AI·혁신공유거버넌스 분과 등 4개 분과가 있다. 관계부처 등의 이행점검을 거쳐 각 분과별 이행 결과들이 차례로 나오고 있다.
◇자율규제 이론
'자율규제'를 정확하게 무엇이라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가, 분야, 환경, 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개념을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규제와 사회적 규제 어느 쪽에서나 정부를 대신해 관련 업계가 자율적으로 업계의 기업 또는 직종의 사업자 행동을 규제하는 것'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조직화된 집단이 그 구성원의 행위를 규제하는 것'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또한 '기업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동 행동을 취하는 행위 일반, 이론적으로는 공공재의 사적 공급'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부 또는 법적 개입 흔적이 있는 경우 자율규제로 간주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경우도 존재한다. 자율규제에 대한 여러 견해가 존재하기 때문에 섣불리 정의를 내릴 수 없지만 결국 자율규제의 핵심적 의미는 종래 규제의 객체였던 사업자가 자신이 준수해야 할 기준들을 스스로 마련하고 그것을 준수하는 것이다. 규제의 주체로서 지위를 가지며 정부·행정에 의한 통제가 사업자 자기책임 차원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율규제 정의를 명확히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율규제 유형도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될 수 있다. 분류 기준을 범위 중심으로 분류하는 경우 개인적 자율규제와 단체 자율규제로 분류할 수 있다. 규제 대상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경우에는 경제적 자율규제와 사회적 자율규제로 나누기도 한다. 이외에도 조직형태별, 실현방식 등 여러 기준이 있지만 대표적인 논의는 정부 개입정도를 기준으로 유형을 구분하는 줄리아 블랙(Julia Black) 이론이 대표적이다. 해당 이론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위임적 혹은 명령적 자율규제와 민간이 설정한 규제 내용을 승인하는 승인적 혹은 제재적 자율규제, 정부의 관여가 전혀 없는 순수한 의미의 자발적 자율규제, 민간이 자체적으로 설정했지만 이를 준수하지 못할 경우 정부 규제가 적용되는 강제적 자율규제로 구분한다.
자율규제가 기업 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규제의 주체가 그 방법에 대한 재량권을 가지고 목표를 설정하며 해당 목표가 자신의 사업에 대한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통해 설계될 가능성이 높아 자율규제가 유용하다고 본다. 또한 스스로 만든 기준이기 때문에 더욱 합리화될 수 있으며 준수 가능성의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 급변하는 플랫폼 산업 특성상 정부 정책 또는 법률 부재로 인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경우 규제 주체인 플랫폼 기업이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반면, 자율규제가 시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기업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감시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위장행위'로 보기도 한다. 자율규제에 참여하는 플랫폼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준만을 형성하는 경우를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율규제는 그 기준이 미약하고 집행도 효과적이지 않으며 규제위반에 대한 처벌도 상대적으로 부드럽거나 비밀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국내외 자율규제 사례
미국의 경우 법률과 함께 자율규제를 통해 기업을 통제하고 있다. 이때 자율규제는 100% 기업에서 내부적으로 통제하는 순수한 의미의 자율규제가 아니다. FTC법 제5조(불공정 경쟁방법의 사용 위법)를 구체화하기 위해 FTC에서 제작·배포한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민간 차원의 통제가 이루어지고 가이드라인을 위반할 경우 FTC로부터 직접적인 제재가 이루어지는 강제적 자율규제를 의미한다.
가이드라인은 광고·마케팅, 신용·금융, 개인정보보호·보안 등의 카테고리별 규칙 또는 지침을 활용해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방대한 양의 개인정보를 이용한 프라이버시 침해, 자사우대행위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규제·단속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해 데이터 보안유지 단계별 지침, 데이터 침해 대응 시 비즈니스 지침 등을 안내한다. 신용·금융부분에서 신용·대출, 채권추심, 핀테크, 저당권 등 핀테크와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보안 유지와 관련한 10가지 보안 시작 원칙에 대해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광고·마케팅과 관련해서도 기만광고 방지 지침, 소비자 리뷰에 대한 기업이 숙지해야 하는 사항 등이 담긴 광고·마케팅에 대한 기본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주류, 비영리단체, 의류·직물, 부동산 등 여러 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율 규제에 대해 안내를 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위한 사이버 보안이나 중소기업 보호 사례도 제공해 자율규제를 실천할 수 있도록 진행한다.
EU의 경우 온라인 허위조작정보와 관련해 유럽집행위원회 고위전문가그룹을 통해 10가지 핵심원칙을 제안했다. 2018년 9월 허위조작정보 대응 실천강령이 공표돼 페이스북·구글·트위터·모질라와 같은 개별 회사뿐만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 연합체 'EDIMA', 광고업계와 광고주를 대표하는 사업자 협회 등이 서명했다. 실천강령에는 △광고게재의 엄밀한 검토 △ 정치광고·이슈광고 △서비스의 완전성 △소비자에게 권한·자율권 부여 △연구 공동체에게 권한·자율권 부여 등 5가지 주제 아래 총 15가지 준칙이 담겨있다.
이후 발표된 보고서에는 EU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관련 업계와 함께 '실천강령'을 통해 노력함으로써 정치 커뮤니케이션 투명성을 높이고 온라인 서비스가 조작적인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로 인해 이용자는 자신이 왜 특정 정치 표현물·정치광고를 보게 되는지, 이러한 표현물·광고가 어디에서 오는지, 누가 그러한 표현물·광고 뒤에 숨어있는 지를 알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국내의 경우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범부처가 참여하는 플랫폼 민간 자율기구를 총 4개 분과로 구분해 진행했다. 갑을분과에는 오픈마켓 분야와 배달앱 분야로 나눴으며 오픈마켓 분야는 지마켓, 11번가, 네이버, 쿠팡 등 오픈마켓 사업자들과 이용 사업자 단체가 참여해 총 9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오픈마켓 입점약관(계약서) 기재사항과 오픈마켓 입점 계약 해지·변경 등의 사전통지가 포함된 △입점계약 체결 관행 개선 △오픈마켓 사업자와 이용사업자간 분쟁처리 절차 개선 △각 플랫폼별 이용사업자(입점판매자)와 상생·부담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어 지난 9월 초, 공정한 자율시장 확립을 위한 입점업체 거래관행 개선을 이행하고 한국온라인쇼핑협회를 중심으로 '오픈마켓 자율분쟁조정협의회' 구성·운영을 위한 운영 세칙을 마련해 중소기업중앙회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배달앱 분야의 경우에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를 중심으로 3월 자율규제 방안을 발표 후 9월 자율분쟁조정협의회 출범식을 진행했다.
소비자이용자분과의 경우 기존 논의된 사기 쇼핑몰로 인한 소비자 피해 확산·방지에 더해 소비자 집단피해 보호에 방점을 두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논의했다. 그 결과, 최근 언론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진 '먼지 제거 스프레이'에 대해 잠정 판매를 중지하기로 협의했다. 소비자이용자분과 첫 성과물로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데이터AI분과의 경우 '검색·추천 서비스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자율규제 원칙(안)'을 마련·발표했다. 인터넷 검색 또는 추천 서비스에서 노출되는 순서, 방식 등의 정보를 사업자가 스스로 공개해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관련 서비스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함이다. 원칙안은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검색 노출 순서 결정·추천 기준에 따라 노출되는 순서, 방식 등을 결정하는 데 활용되는 주요 변수를 자율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기본원칙 아래 △공개사항과 범위 △변경사항 현행화 △공개방법 등 검색노출 순서 결정·추천기준 등을 설정했다.
혁신공유·거버넌스 분과는 플랫폼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 제고를 위한 8대 원칙을 선정했다. 플랫폼의 긍정적 기능은 촉진하고 부정적 영향은 최소화하기 위해 지켜야할 실천 원칙이 마련될 필요성이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플랫폼별 사회가치 제고를 위한 주요 활동 계획도 공유 됐다.
◇맺음말
세계적인 플랫폼 규제법안이 시행·통과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정부는 '자율규제' 정책 목표를 세워 진행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중소기업과 상생, 소비자 보호와 관련해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온플법' 제정과 같은 플랫폼 관련 법적·행정규제 중심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사료된다.
온라인플랫폼 독과점과 관련된 법안이 지속적으로 발의되고 있는 상황과 플랫폼 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자율규제' 방안의 실천·이행을 진행하기에는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자율규제' 테두리 속에 심도 있는 주제에 대해 민·관·학이 논의할 수 있는 기간을 부여하고 플랫폼 기업이 준수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할 것이다.
김윤태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상근부회장 kyt@kolsa.or.kr
〈필자〉김윤태 한국온라인쇼핑협회 부회장은 충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세종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 LG산전에 입사해 인사노무팀장을 지냈고, 1999년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2013년부터 협회 상근부회장, 2019년부터 부설 온라인쇼핑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전자상거래 산업 분석 연구, 비대면 디지털 경제 시대에 대한 연구·책자를 발간했다. 2018년부터 유통법학회 부회장과 산업통상자원부 민간통상교섭위원을 맡고 있고 2020년 7월부터 공정거래위원회 대규모유통거래 분쟁조정원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