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플랫폼 기업의 '자율규제'를 보장하는 법률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전규제'인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도 준비하고 있다. 이에 플랫폼 업계는 정부의 자율규제 방침에 적극 호응하면서도, 국내 현실은 물론 대외적 환경도 고려하지 않은 채 규제법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세계는 미국·중국·유럽 등을 중심으로 디지털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기업과 국가가 밀접하게 의존하는 이른바 '플랫폼 국가 자본주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규제로 세계적 흐름을 역주행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토종플랫폼 기업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할 때다. 전자신문은 '플랫폼 규제, 패러다임을 바꾸자'라는 주제로 5회 연중기획 시리즈를 보도한다. 이를 통해 국내 플랫폼 산업 현실을 살펴보고 바람직한 산업 육성방향과 글로벌 디지털 패권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안을 모색한다.
◇미국·중국 인공지능(AI) 주권 사활, 유럽·일본은 플랫폼 규제
미국과 중국 등 빅테크를 보유한 국가에서는 플랫폼 기반 AI 분야 경쟁력이 국력이라는 판단하에 자국 플랫폼 규제를 없애고 진흥책을 펼치고 있다. 올해 미국 의회에 발의된 빅테크 규제 법안 6개 중 5개가 폐기됐다. 빅테크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가 예상됐으나, 틱톡·핀둬둬 등 미국 내 중국 플랫폼의 선전으로 인해 AI 기술 패권에 대한 위기감 생성되며 자국 빅테크 기업 보호로 선회하고 중국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플랫폼 기업 지원책을 고심하고 있다. 최근 '플랫폼 기업의 발전 및 고용, 국제 경쟁력 확보 추진'을 선언 등 미국 기업과 AI 기술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자국 기업 키우기에 열중하고 있다. 중국 내 챗GPT 형태의 AI를 개발 중인 기업은 바이두·알리바바 등 12개에 달하며, 틱톡 등을 통해 공격적으로 수집한 학습데이터를 기반으로 미국과 격차를 좁히고 있다.
유럽은 미·중 빅테크에 대한 포괄적 사전규제를 위한 디지털시장법(DMA)을 시행했다. DMA는 시가 총액, 유럽경제지역 내 매출 규모, EU 내 월간 사용자 수 등 여러 기준 중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플랫폼 기업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해 규제한다. 대표적인 적용 대상은 구글·애플·아마존·페이스북·틱톡 등이다. 일본 역시 애플 앱스토어 및 구글 검색 서비스에 대한 규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2021년 빅테크에 거래 조건 등 정보 공개 의무화를 한 '디지털 플랫폼 거래 투명화법'에 이은 제2의 글로벌 빅테크 규제다.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를 만든 국가들의 공통점은 자국 플랫폼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내 자율규제 추진한다며 사전규제도 검토 '혼란'
정부는 국내 플랫폼 기업의 자율 규제를 보장하는 법률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플랫폼 자율규제의 법적 근거를 위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오는 31일까지 입법예고하고 이해관계자 등 의견을 수렴해 연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개정안은 부가통신사업자가 자율 기구나 자체 규율을 통해 건전한 거래 환경을 조성하고 이용자 보호, 혁신 촉진, 상생 협력 등에 관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공정위가 EU DMA를 모방한 사전규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도 준비하고 있다. 거래 환경과 이용자 보호 등의 분야에서는 기업에 자율을 부여하더라도 플랫폼 간 공정 경쟁 환경은 정부가 사전규제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자율규제와 사전규제 원칙이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에도 약 20건에 가까운 플랫폼 규제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정부의 자율규제 법안과 사전규제 법안이 국회에서 최종 조율을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미 사전규제 법안이 물량공세를 벌이고 있고 공정위까지 나서는 '중과부적' 상황이다.
◇해외 플랫폼 '역차별 규제' 무기로 네이버·카카오 위협
최근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은 구글·페이스북 등 해외 플랫폼에 밀려 주요 서비스 점유율이 하락하는 추세다. 반면 해외 플랫폼은 국내 이용자 선택을 받으며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카카오톡과 유튜브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지난 8월 기준 각각 4196만, 4162만으로 유튜브가 카카오톡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국내 검색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2월 네이버 65% 구글 27%에서 올해 7월 네이버 53% 구글 38%로 격차가 감소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올해 2월 기준 인스타그램이 1853만명으로 1위를 차지했고 뒤를 이어 네이버 밴드(1758만), 페이스북(980만), 카카오스토리(842만) 등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점유율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 건 국내 플랫폼의 기술력이나 서비스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국내 플랫폼은 국민에 특화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업계는 서비스 문제가 아닌 국내 플랫폼 기업만 준수하고 해외 플랫폼 기업은 무시하는 '역차별 규제' 등으로 인해 영업 환경이 나빠진 결과로 풀이한다.
업계에서는 플랫폼 사전 규제를 도입하면 과거 국내 기업에만 적용된 '인터넷실명제' '저작권 삼진아웃제' 규제로 국내 동영상 서비스 산업을 죽이고 유튜브가 시장을 독식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사례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사전규제로 국내 플랫폼만 피해, 해외 플랫폼 반사이익 안돼
사전규제가 생기면 현실적으로 해외 플랫폼 규제가 어렵기 때문에 결국 국내 플랫폼만 규제를 받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빅테크는 정부 규제해소를 발판 삼아 AI 기술 개발 및 고도화 집중하는데 국내 플랫폼은 AI 기술 개발 열중해야 할 시기에 규제로 경쟁력 저하될 수 있다.
이에 국내 플랫폼 기반 AI 고도화 전폭 지원을 통한 'AI 주권' 수호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지난 8월 초거대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X 출시 콘퍼런스 기자간담회에서 “생성형 AI는 국경을 넘어 벌어지는 싸움”이라며 “사전규제보다는 자율규제로 전략적 틀을 잡아주고 혁신을 유발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EU DMA법 시행에 따른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 법률 내용을 따라가는 것은 우리나라 플랫폼 현실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업계의 자율규제 노력을 지켜본 후 상황에 따라 필요한 부분에 대해 규제 체계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다.
함봉균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