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슬며시 컴컴한 지하 양조장 뒷문을 열었다. 숙성 중인 와인이 담긴 오크통이 빼곡히 들어차있고 이를 슬쩍 빼돌리려는 찰나 '끼이이익, 끼이이익' 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하자 놀란 남자는 “악마가 살고 있다”고 외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 달음에 내뺐다.
칠레 대표 와이너리인 콘차이토로사의 '디아블로'(Casillero del Diablo)가 탄생하게 된 일화다. 'Casillero del Diablo'는 스페인어로 '악마의 와인창고'(Devil's Cellar)라는 의미다. 당시만 해도 와인을 훔쳐가는 도둑이 많아 이를 막기 위해선 사람이 지키고 있어야만 했다. 콘차이토로의 설립자인 돈 멜초 경은 와인 도난을 막기 위해 카브에서 기괴한 소리가 나도록 꾸몄고 '악마가 나온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는 대성공을 거뒀고 이후 일화가 퍼지면서 악마의 와인을 콘셉트로 한 '디아블로'가 나오게 됐다.
디아블로가 특별한 소리로 유명해졌다면 음악을 담은 와인도 있다. 이탈리아 와이너리인 바바(BAVA)는 파가니니와 그의 바이올린인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영감을 받아 '스트라디바리오'를 만들었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가 만든 현악기를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부른다. 세계 최고의 명작이라고 여겨지는 이 악기는 현대에선 장인정신이 만들어낸 작품을 뜻하기도 한다.
바바는 음악이 와인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여기고 와인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실제로 바바 와이너리 한편에 클래식 콘서트 홀을 만들어 놓고 공연도 진행하고 있다. 병 레이블에는 해당 와인의 맛을 바이올린, 더블베이스, 첼로, 호른 등 악기의 특색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 이름을 그대로 딴 샴페인도 있다. 프랑스 와이너리 샤를르 드 까자노브의 '스트라디바리우스'는 18세기 널리 사용됐던 병 모양을 재현해 멋을 살렸다.
국내에서도 음악으로 술을 빚는다는 양조장이 있다. 경남 밀양의 양조장인 밀양클래식술도가는 막걸리를 발효시키는 내내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는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발효과정에서 효모의 운동성이 음악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확인하고 클래식음악을 24시간 들려줘 술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부재료로 제품을 출시하면서 MZ세대 사이에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잔잔한 클래식 음악과 한 잔 술을 함께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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