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상장 제조업체 대표는 회계법인을 통해 ESG 컨설팅을 받은 뒤 충격에 빠졌다. 유럽연합(EU) 시장 수출을 위해 그동안 ESG에 신경을 많이 썼는 데, ESG 데이터 결과 수치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부족해 실제 공시 데이터로 쓰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기본적 ESG 공시 가이드 라인도 있지만, 보고서 작성 지침이나 정보 공개 수준, 검증 등은 공시 당시 상황에 맞추다 보니 데이터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였다.
회계법인은 데이터 신뢰도 확보를 위해 디지털 기반 ESG 데이터 수집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 업체 대표는 실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 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비단 이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면 국내 대다수 중견 및 중소기업은 ESG 경영을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업이 수작업에 의존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ESG 데이터를 수집하고 공시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렇게 준비한 공시 자료마저도 객관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EU, 미국 등 주요국은 ESG 관련 지속가능경영 지침을 제정하거나 탄소국경조정제도, ESG 공급망 관리법 등을 통해 기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정밀한 디지털 시스템에 기반해 ESG 경영을 적극 도입해야 하는 시점이다.
국내에서도 금융위원회가 ESG 공시 의무화 시기를 유예하긴 했지만, 기업 입장에서 마음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금융위도 시기만 미뤘을 뿐 공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ESG 자율 공시 확산을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 대비 지원에 나섰다.
디지털 ESG는 기업의 ESG 진단부터 생산 전과정에 걸친 ESG 데이터 수집 및 자동화 연계, 데이터 측정 및 관리, 공시 대시보드 체계 구축은 물론 탄소 데이터 저감을 위한 탄소 프로젝트 수행까지 모두 포괄해야 한다. 기업의 경영 및 생산 환경 전반에 디지털 ESG 체계가 뿌리내려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 디지털 기반 ESG는 산업의 밸류체인을 포괄하는 디지털 트윈 기반의 ESG 인프라 구축으로 이어진다. 글로벌 리서치 및 컨설팅 업체인 캡제미니(Capgemini)의 'Digital Twin Survey'(2022)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800 곳 중 456곳(57%)에서 스마트 팩토리에 쓰이는 디지털 트윈이 지속적인 ESG 경영을 위한 필수 기술로 꼽혔다.
조사 대상 기업은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도입할 경우 ESG와 접목해 투자자와 규제 기관에 ESG 정보를 적시에 제공함은 물론, 기업 비즈니스 곳곳에서 개선 가능한 ESG 분야를 찾아낼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실제로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는 산업 밸류체인을 포괄하는 디지털 트윈 기반의 ESG 인프라 구축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자동차 부품사와 완성차가 함께 모여 탄소 데이터 수집 체계를 만들었고, 일본은 배터리 공급망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했다. 모두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공급망 내 수많은 협력사까지 포괄하며 제품별 탄소 데이터 등 ESG 최신 정보를 창출하고 공급망 차원의 탄소 저감 등 ESG 혁신 방법을 찾아 실천하고 있는 사례들이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 관리 영역은 디지털 트윈을 통해 바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부분이다. 탄소 측정, 감축, 상쇄 등 주요 영역별로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온실가스 직접배출량(Scope1)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시나리오를 구현하는 것만으로도 직접적 ESG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가령, 제조 공정 시설에 사물인터넷(IoT) 장치를 탑재해 정확한 탄소 배출량 데이터를 얻고,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한 상쇄 방안을 디지털 트윈 분석을 통해 정확하게 찾아 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기업 상당수가 클라우드 기반의 디지털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디지털 ESG를 구현할 수 있다. SK㈜ C&C와 애커튼 파트너스처럼 디지털 ESG 전문기업 도움을 받아 디지털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종합적인 디지털 ESG 해법을 위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기업에 ESG는 더 이상 단순한 사회공헌 활동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공시할 수치를 준비하는 선에서만 머물 수 없는 당면 과제다. 준비만 확실하다면, 주요국의 무역 규제를 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고객을 찾아내거나 사업을 확장하는 데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이야 말로 디지털 트윈으로 기업의 과거와 현재의 ESG를 분석하고 미래 ESG를 예측 관리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통해 기존 고객의 신뢰는 물론 글로벌 경쟁 기업 대비 우월한 ESG 시장 지위를 확보해야 할 때다.
장혁수 애커튼 파트너스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