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엔젤이나 벤처캐피털(VC)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전까지는 창업자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버티며 '죽음의 계곡(데스밸리)'을 건너야 한다. 죽음의 계곡은 비즈니스모델을 개발하고 시제품을 출시해 매출이 발생하기 직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개발비용과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 등 지출할 비용은 많은 데 들어올 돈은 없어서 이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많은 스타트업이 사라진다.
창업 초기 앙트레프레너들은 데스밸리를 무사히 넘기 위해 최대한 지출을 줄이며 웬만하면 대부분 그냥 몸으로 때우고 모든 일을 직접 한다. 우여곡절 끝에 데스밸리를 무사히 건너면 드디어 본격적으로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은 비즈니스에 필요한 전체 자금을 한 번에 투자를 받지 않고, 성장 단계별로 그 단계에서 필요한 자금만 조달하고,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면 그 다음 단계를 위한 돈을 확보한다. 스타트업은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절대 한 번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 않고 사업의 진척사항과 시장현황을 파악하면서 나눠서 돈을 넣는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은 투자자와 약속한 일정대로 회사를 성장시켜야 다음 단계 투자를 받을 수 있다. 예정대로 진행이 되지 않으면 이미 투자가 많이 되었더라도 투자는 중단되고 스타트업은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투자는 시제품 출시, 특허 취득, 시장점유율, 성장률, 해외진출 등을 고려해 시리즈 A, B, C, D, E, F, G 등으로 나누고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가 지속된다는 것은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후기 시리즈로 갈수록 기업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가령 한 회사가 시리즈 A에서 1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투자를 유치해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다시 시리즈 B 투자를 받을 가능성도 높아지고, 기업가치도 시리즈 A의 가치보다 커지게 된다. 시리즈 B로 인한 성과가 나타나면 또다시 시리즈 C로 넘어가면서 밸류에이션이 높아진다. 이러한 사이클은 회사가 엑시트를 하거나 치명적인 문제로 투자가 중단될 때까지 지속된다.
그런데, 최근 투자시장에서 시리즈 개념은 많이 희미해지는 분위기다. 비즈니스의 성장 단계를 시리즈A, B, C, D 등 획일적 기준으로 구분하기 어려워진 흐름에 기인한다. 과거 비즈니스는 산업별 특징과 경계가 뚜렷했다. 가령 제조업의 경우 시제품 개발 단계는 시리즈A, 양산단계는 시리즈B, 해외 진출 단계는 시리즈C 등 성장 단계를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즈니스 형태와 단계를 구분하는 것도 명확하지 않은 빅블러(Big blur) 시대이며, 제조와 유통이 혼합되고, 유통과 금융이 합쳐지는 혼합형 비즈니스모델과 플랫폼기업이 대세인 상황에서 회사의 성장단계를 과거의 잣대로 획일화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초기 투자'와 '후기 투자'로 통칭하는 분위기다.
스타트업의 펀딩은 학생들이 한 학년을 보낸 후 자연스럽게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듯 순조롭지 않다. 미국의 경우 엔젤 투자를 받은 후 시리즈 A에서 투자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은 대략 40% 수준이다. 무려 60%가 투자유치에 실패한다. 이후 후기투자로 갈수록 생존율은 급격하게 낮아진다. 시리즈 F 단계에 이르면 생존율은 1% 미만으로 뚝 떨어진다. 엔젤 투자를 포함해 투자를 받은 전체 스타트업의 약 80% 정도는 초기투자 단계에서 게임을 마친다. 물론 이는 미국의 상황이지만 다른 나라의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후기 투자로 갈수록 투자 규모는 커지지만 생존율은 급격히 낮아지는 것이다.
스타트업 게임은 바늘구멍을 향해 달려가는 낙타들의 게임에 비유할 수 있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길은 더 좁아지고, 문은 더 빠르게 닫힌다. 스타트업에게 조기 엑시트가 중요한 이유다. 특히 요즘과 같은 혹한기에는 더욱 그렇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