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가짜뉴스와 헤어질 결심

[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가짜뉴스와 헤어질 결심

예술 애호가 빌 게이츠는 수많은 미술작품의 디지털 복제본을 수집했고, 복제본을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에 전시하기도 했다. 기자가 “당신 회장께서 수집한 작품이 복제품이란 것은 알고 있나요?”라고 묻자 게이츠의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네, 잘 알고 계십니다. 저희 회장께서는 진품보다 복제품을 선호하십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가짜뉴스 근절 추진 방안'의 후속조치로 네이버, 카카오, 구글, 메타와 '가짜뉴스 대응 민관협의체'를 출범했다. 세계적 빅테크 규제강화 추세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트위터 블루'와 유사한 '유료 인증 서비스'를 도입한다. 가짜뉴스를 막으려는 빅테크의 시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빅테크는 왜 가짜뉴스와 헤어지기 어려운 것일까.

'진실'은 지루하고 따분하다. 만약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뉴스라면 엄청난 관심이 쏟아질 것이다. 누군가 동영상까지 촬영해 올리면 금상첨화다. 사람이 개를 물을 확률은 거의 없고, 정말로 물었다면 뭔가 짜릿한 사연이 있었으리라. 가짜뉴스일지도 모르고, 과도한 놀라움, 역겨움, 충격, 공포의 감정을 지나치게 부추긴다는 거리낌은 들지만 무슨 상관이랴. 내가 조작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갑자기 지루하고 따분했던 일상의 감옥에서 삶의 이유라도 찾아낸 듯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남들보다 내가 먼저 공유했을 때 내 존재감은 더 높아진다. 원래 팩트체크는 쉽지 않고, 대중적 관심은 곧 식어버리겠지만, 내가 한번 받은 주목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노젓는 법이다.

데브 로이 MIT 교수가 가짜뉴스 12만 6000개를 분석한 결과, 가짜뉴스는 진짜보다 훨씬 많이, 빨리, 널리 전달됐다. 공유 확률도 가짜뉴스가 진짜보다 70% 이상 높았다.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보다 널리 퍼졌다. 특히 정치 분야의 가짜 뉴스는 양도 많고 전파 속도도 매우 빨랐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혹자는 확증편향이나 필터 버블, 선택적 공유 같은 심리현상에 주목한다. 하지만, 이성적 인간이 왜 확증편향이나 필터버블처럼 어리석은 심리현상을 떼내지 못하는 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이성적 인간이 원시적 본능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 우리의 삶이 본질적으로 불안정하고 예측불가능해 그 누구도 한 치 앞조차 완전히 인도할 수 없다는 삶의 근원적 한계에 대한 자각이고, 둘째, '진실을 독점'하려는 어떤 권력자가 초래할 위험성이 더 클 수도 있음에 대한 자각이다. 가짜뉴스에 대한 비이성적 관심은 한편 계몽주의적 권력과 언론을 향한 불신이기도 하다.

가짜뉴스는 '진실의 근원적 불완전성' 때문에 영원히 사라지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는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누군가는 막아서며, 누군가는 큰 이득을 보고, 누군가는 큰 희생을 치를 것이다. 사회는 큰 혼돈에 빠지고 다시 회복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마치 코로나19 바이러스 경험처럼 가짜뉴스는 우리 스스로 면역력을 획득해가며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들 자신의 그림자다. 가수 마이클 잭슨은 '백인이 되고 싶은 욕망에 많은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가짜뉴스에 평생 시달렸다. 1983년 잭슨의 피부과 의사인 아놀드 클라인 박사는 그의 얼룩진 흰 피부와 진한 화장이 비틸리고(피부백반증)와 루프스라는 질병 때문임을 공식발표했지만, 인종문제에 가려진 이 '따분한 의학적 진실'은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