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헤어질 결심 그리고 펜타닐

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

“원하던 방식으로 보내드렸어요. 펜타닐 캡슐 네 개면 되죠. 나도 네 개를 챙겼구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변사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멜로 스릴러다. 촘촘한 심리 묘사를 통해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에는 펜타닐이 등장한다. 서래가 중국에서 간호사였을 때, 병든 자기 어머니를 펜타닐로 안락사시킨다. 그리고 어머니 유해를 담은 항아리 뚜껑 밑에 4개의 청록색 캡슐을 붙여놓고 자신도 언제든 원할 때 죽으려 한다.

펜타닐은 1959년 벨기에 과학자 폴 얀센이 개발한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의 일종이다. 아편을 정제해 만든 합성 마약 펜타닐은 중추신경계에서 통증의 전달을 억제하고 황홀한 쾌감을 유발한다. 약물 발현시간 역시 1~4분 정도로 매우 빠른 편이기에 수술 중 마취 보조 또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 중증 환자에게 주로 사용된다.

문제는 펜타닐이 인체에서 자연 분비되는 엔도르핀에 영향을 미쳐 강한 중독성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엔도르핀은 뇌에서 추출되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로 진통 작용과 쾌감을 유발한다. 합성 마약인 펜타닐에 노출되면 약물이 주는 진통 작용과 쾌감이 훨씬 크기에 인체는 엔도르핀 수용체를 줄이고 약효가 끝나는 순간 엔도르핀 부재로 심한 통증과 금단 증상을 겪게 된다.

펜타닐이 엔도르핀 정상적인 분비를 방해해 약물을 탐닉하도록 한다. 펜타닐에 중독된 사람은 인지 기능장애, 섬망, 환각 등의 부작용을 겪을 수 있고 과량 투여 시 신경이 마비되고 호흡이 억제돼 사망에 이르게 된다.

몸에 붙이는 패치 형태로 제작된 '펜타닐 패치'는 접근성이 매우 낮아 청소년 마약 범죄에 주로 쓰인다. 다른 마약류와 달리 의사 처방에 따라 합법적 구매가 가능하고 몸에 붙이기만 해도 빠른 속도로 약효가 나타나 마약을 처음 접하는 청소년 역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더욱이 성장기 청소년 신체는 성인보다 마약류에 민감하기 때문에 중독될 가능성이 크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19세 이하 마약류 사범은 2017년 119명에서 2021년 450명으로 4년간 4배나 급증했다. 실제 지난해 10대 청소년 41명이 거짓 통증 호소로 펜타닐 패치를 불법 처방받아 유통·판매·투약한 일이 적발되기도 했다.

투약량이 조금이라도 많다면 사망 사고도 잇따른다. 지난해 미국 시민단체 '펜타닐에 반대하는 가족(Families Against Fentanyl)'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16년 미국에서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이들은 20만9491명에 달한다.

2㎎이 채 되지 않는 매우 적은 양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는데, 의약용이 아닌 불법적으로 만든 것이라면 용량이 정확하지 않아 뜻하지 않은 사망자가 양산된다.

과다 투여 시에는 질식해 죽게 된다. 그 원리는 이렇다. 우리 몸은 체 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호흡중추에 이를 알려, 숨을 참을 때 생기는 고통인 '질식통'을 유발해 숨쉬기를 유도한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