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디지털 권리 장전'의 세가지 독법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

9월 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디지털 공동번영사회의 가치와 원칙에 관한 헌장'(이하 디지털 권리장전)은 국제 사회와 세계 시민을 향해 디지털 문명의 도래를 천명함과 동시에 디지털 시대에 추구해야 할 적합한 규범과 보편적 권리를 정립한 담대한 메시지다.

'디지털 권리장전'에는 '자유와 권리 보장', '공정한 접근과 기회의 균등', '안전과 신뢰', '디지털 혁신의 촉진', '인류 후생의 증진' 등 5가지 원칙이 제시됐다. 기존 캐나다, 미국, 프랑스 등 개별 국가의 선언문은 물론 'EU 디지털 권리 및 원칙 선언' (2022년 12월), 'UN 디지털 국제 공조를 위한 로드맵'(2020년 6월) 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얼개와 내용이 압축적이면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의미론적 깊이와 두께가 녹아 있다.

비록 '디지털 권리장전'에 법적 구속력이나 실효성이 있는 것은 아니나 인류 공동체를 향한 담론의 선언적 상징성만으로도 디지털 모범 국가인 한국의 국제적 위상 제고에 일조할 것이 분명하다.

필자는 본 담론이 함축하고 지향하는 핵심적 메시지를 읽는 세 가지 독법을 제안한다.

첫째, '디지털 권리장전'은 인간학의 관점에서 디지털의 궁극적 사명이 인간 삶의 개선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디지털 휴머니즘을 천명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인간을 중심에 놓고 개발돼야 하고, 인간과 화해 속에 공존해야 하며, 공공의 선을 창출하고, 인류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해야 한다. 인간이 디지털 기술에 의해 압도당하거나 소외되는 상황에 방치되어서는 안 되며, 인간의 얼굴을 띤 기술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호존중, 타자성에 대한 인간학적 성찰이 필요하다.

둘째, 기후 위기 시대로 대변되는 인류세 시대에 인류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가 지구, 현대 문명 및 우리 각자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점에서 제26조 '지속가능한 디지털 사회'는 시의적절할 뿐만 아니라, 세계 국가 및 시민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이번 선언문의 중핵이다. 환경 및 생태에 대한 첨예한 의식이 2015년 유엔이 발표한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의 17개 세부 목표 중 환경과 삶의 질 관련 5개 사항들과 접해 있다는 점에서 두 담론은 상호보완적이다. 디지털 기술을 통해 환경 및 생태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효과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문명과 지속가능성 공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인터넷과 인공지능 영역에서의 힘과 적자생존의 냉혹한 현실이 엄존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디지털 혁명은 치밀한 지정학적 사유를 요구한다. '디지털 권리장전'이 추구하는 공동번영사회라는 이상을 십분 존중하면서도 개별 국가, 국제기구, 시민단체, 초국가적 빅테크 기업 등 당사자간 첨예한 이해관계는 이상적인 원칙만으로 풀 수 없는 복잡다기한 문제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그에 대한 철저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당분간 미국과 중국이 구축한 디지털 제국이 지정학적 상황을 지배할 것이며, 유럽은 디지털 주권 강화를 위한 보호장치와 법체적 규제를 가동하고, 아프리카는 사이버 식민화의 위협에 놓이게 되는 등 우리는 전대미문 디지털 제국의 귀환을 목격할 것이다. 디지털 혁명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탈중심화를 촉발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극소수의 초국가적 기업과 초강대국의 손에 권력이 집중될 개연성이 높다. '디지털 권리장전'이 천명한 이상을 국제 공조를 통해 현실화하기 위한 각계 전문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 dodo@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