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반도체, 미·중 갈등에도 실리 찾아야

소재부품부 박종진 기자
소재부품부 박종진 기자

“이스라엘 전쟁 이슈보다 미국 정부의 대(對)중국 규제 강화가 걱정입니다.”

“양국 갈등에도 중국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입니다. 미국 정부 입장은 존중하지만 중국 마케팅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최근 만난 미국계 반도체 기업 임원들의 미·중 갈등 심화 상황에 대한 반응이다. 양국 갈등이 미국 기업에 분명한 악재고 실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내년 1분기부터 세계 반도체 시장이 턴어라운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지속되는 미·중 갈등이 변수로 남아있다.

반도체 불황에도 미 정부는 계속 중국을 옥죄고 있다. 상대적으로 사양이 낮은 인공지능(AI) 칩도 중국에 수출할 수 없게 하고 타국을 통해 중국으로 첨단 반도체가 흘러들어가지 못하도록 규제를 촘촘히 했다.

앞서 엔비디아·인텔·퀄컴 등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나서 규제 완화를 요구했지만 미 정부의 입장 변화는 요원해 보인다. 미 정부는 중국 내 엔비디아의 저성능 AI 칩이나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와 같은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범용 장비 반입도 차단하기 시작했다.

미·중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 입지도 불안정해지고 있다. 고래 싸움에 낀 형국이다. 미국은 군사·정치적 동맹이자 반도체 선진국으로 협력이 중요하고 중국은 놓칠 수 없는 거대 시장이다. 그렇기에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전략적 균형'이 필요하다. 미국 기업조차 수용하기 버거워하는 정책에 동조하기보다는 우리 반도체 기업이 대중국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을 설득하는 데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견제론이 대표적이다. 최신 장비 반입 금지로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D램이나 낸드플래시를 생산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중국이 경쟁력을 갖게 돼 글로벌 시장에서 더 영향력이 커질 것이란 우려를 전달했다. 이 것이 받아들여져 미국 기업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팹)에는 제한 없이 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만약에 정치적이고 지정학적인 이유로 미국 정부와 입장을 같이 할 수 밖에 없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어내야 한다. 미국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의 자국 투자를 요구하듯 미국 반도체 기업의 국내 투자를 요구하는 방식도 선택지로 둬야 한다.

삼성전자의 용인 첨단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와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미국 기업이 국내에 팹을 설립하고 입주할 수 있는 부지가 마련된다. 이미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 램리서치가 국내에서 3개 팹을 운영하고 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전략적 선택과 대응이 중요하다.

박종진 기자 trut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