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센던스(transcendence). '넘어서다' 또는 '넘어가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트랜스켄데레(transcende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접두사 역할인 트랜스(trans)는 '건너편' 또는 '너머'란 의미다. 단어 그대로 풀어보면 '어떤 것 너머'나 이것을 향하는 지향과 행위가 된다. 그리고 그 너머란 인간 경험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사고의 8할은 대상이 있다. 혁신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혁신도 대개 뭔가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해법을 탐닉한다. 하지만 잡스가 그의 '씽크 디퍼런트'란 광고에서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의 것으로 각인시킨 혁신이 과연 그 정도인 뿐일까.
NEC는 1899년에 설립되었으니 가히 영년(永年)기업이라 불릴만하다. 컴퓨터와 통신장비에선 최초의 일본 기업 중 하나이자 여전히 존경받는 기업이다. 그런 NEC가 혁신기업의 대명사이던 1990년 즈음 반도체, 통신, 컴퓨팅, 가전제품 같은 서로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업 분야를 지배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은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해 했다. 실상 이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간다. 이즈음 NEC는 기술과 시장의 흐름을 세 가지로 보게 된다. 컴퓨터는 대형 메인프레임에서 분산 처리로, 집적회로(IC)는 초고밀도 집접회로(VLSI)로, 통신은 기계식 교환에서 디지털 시스템으로 진화할거라고 했다. 그리고 차츰 컴퓨터, 통신 및 부품은 통합되고 언젠가부터는 구분되지도 않을 것이라 싶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 가지로 수렴되는 듯 보였다. 세 가지 모두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공통의 역량은 무엇일까. NEC는 이렇게 '컴퓨팅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전략적 의도를 만든다. 내부에선 'C&C'로 은밀히 불렸다. NEC가 이 전략적 의도를 뒷받침하는 핵심역량을 축적해 나가고 혁신제품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한참 질주하던 NEC의 모습이었다. 언뜻 보기에 전략적 사업 단위(SBU)의 엇박자는 핵심역량의 지극히 잘 정련된 포트폴리오의 단지 드러난 표제였던 셈이었다. 물론 NEC는 지식 집합을 조정하고 경계를 허물고 재조합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이것의 다른 사례를 소니에서도 본다. 소니에는 CSL라고 불리는 연구소가 있다. 풀어쓰자면 컴퓨터 사이언스 랩인 이곳의 사명은 블루 스카이 리서치에 있다고 한다. 이걸 듣고 누군가는 블루오션을 떠올리며 '옳거니, 역시 제품의 소니야'라고 한다.
하지만 소니가 꿈꾸고 블루 스카이가 떠올린 건 이런 게 아니다. 어디에 쓸지 정하지 않은 채 심지어 과학적 이해란 욕구로 탐색하는 뭔가를 의미했다. 하지만 우리는 소니가 말하는 CSL의 존재 이유인 “현재의 비즈니스를 훨씬 뛰어넘는 범위와 시간을 포용한다”가 무엇을 말하는 지 안다. 소니는 1955년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자신을 알린 후 여전히 혁신의 소니로 건재하다.
예전 대학원생 시절 꽤 넉넉한 후배가 새 차를 샀다며 놀러왔다. 흰 색 혼다 어코드였다.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대시보드가 낮아 보이는 걸” 하자 “여성들이 운전하기 편해 한다네요” 했다. 그즈음 혼다 광고는 새 차의 후드를 땜질해 버리는 줄거리였다. 보닛을 열 일이 없을 거란 메시지였겠다. 이 누군가에게 운전의 편리함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수리점을 들락거릴 일을 없애준 건 혼다의 경량화된 엔진이었다고 한다.
혁신을 드러난 뭔가를 보는 것이라 생각하나. 물론 그렇지 않을리 없다. 하지만 그 언뜻 보기에 그런 것의 다른 뭔가를 찾아내는 것 또한 이것의 몫이다. 그래선지 초월(超越)이란 단어가 이것을 따라다니는가 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