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리걸테크 산업의 미래, 해외에 답이 있다

정재성 로앤컴퍼니 부대표 겸 공동창업자
정재성 로앤컴퍼니 부대표 겸 공동창업자

9월 26일, 국내 법률 시장과 리걸테크 업계에 큰 울림을 주는 소식이 있었다.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플랫폼 이용 변호사에 대한 대한변호사협회의 모든 징계를 취소함으로써, 변호사들의 로톡 가입 및 이용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해 준 것이다. 법무부는 “온라인 법률플랫폼 서비스는 법률시장의 정보비대칭 문제를 해소하고, 국민 사법접근성을 제고해 변호사 조력을 받을 권리의 실질적 보장에 기여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며, 소비자 후생과 사회적 편익을 고려한 결정을 내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해외에서 활성화된 법률플랫폼 서비스를 자유롭게 제공할 수 있게끔 법무부가 결단을 한 것이다. 한국 리걸테크 산업 발전에 중요한 분수령으로 기록될 의미있는 결정이었다.

법무부의 전향적 결정으로 우리나라도 비로소 리걸테크 산업 발전을 위한 건설적 논의의 장을 펼칠 수 있게 됐다. 산업 성숙도 측면에서 해외에 비교하면 여전히 국내 리걸테크 산업은 초기 단계이나 논의가 이뤄지는 것만으로도 발전의 시작이기에 업계 종사자로서 기대하는 바 크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트랙슨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세계 리걸테크 기업은 약 7486개, 전체 투자 규모는 약 16조 원으로 그중 약 30%는 최근 2년 내 투자가 이루어질 정도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대다수 리걸테크 업체는 북미, 유럽, 인도 등에 집중돼 있다. 유니콘 기업 역시 전체 9개 기업 중 6개가 미국이고, IPO에 성공한 15개 기업 중 절반 가까운 곳이 미국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유니콘과 IPO 기업에 일본 기업이 각각 1개, 2개씩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국내 사정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리걸테크 업체 중 유일하게 로앤컴퍼니가 예비 유니콘으로 선정된 것이 전부다. 투자를 받은 기업도 손에 꼽힌다. 기업 규모나 투자를 살펴봐도 국내 리걸테크 산업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해외는 어떻게 산업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까. 미국, 독일, 일본 사례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자.

◇글로벌 리걸테크 산업의 선두주자 '미국'

미국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리걸테크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산업 초기에는 변호사 검색과 법률 정보 검색 분야가 주를 이뤘지만 이후 광학문자인식(OCR), 텍스트 분석 기술이 발전하며 전자 서명 및 법률 문서 자동 작성 등으로 서비스 범위가 확장됐고, 전자증거개시가 도입되면서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전자증거개시는 소송에 참여한 피고와 원고가 상호 필요에 따라 소송 관련 증거를 모두 수집해 공개하는 제도다. 취급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많고, 증거 보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데이터 수집, 보관, 관리, 분석 등을 위해 정보기술(IT)이 적극 활용됐고, 미국 내 리걸테크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법조계에서도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미국변호사협회(ABA)는 변호사에게 기술적 역량 강화에 대한 의무를 부여하고 있으며, 매년 테크쇼(TECH SHOW)를 개최해 법률 시장에 활용 가능한 기술 정보를 활발히 교류하도록 하고 있다. 기술 친화적 환경에서 번뜩이는 혁신 서비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협회와 리걸테크 기업의 상생이 산업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리걸테크 산업 발전 주요국 사례
리걸테크 산업 발전 주요국 사례

◇새롭게 제도 정비하며 산업 발전 이끈 '독일'

독일은 제도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허용하며 산업 발전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국회도서관에서 발간한 '최신 외국입법정보'에 따르면, 독일에는 리걸테크 기업을 종합적으로 안내하는 홈페이지를 통해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2007년 제정한 '재판외 법률서비스에 관한 법률(RDG, 이하 법률서비스법)'도 리걸테크 산업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이 법에서 허가했거나 다른 법률에서 허가된 범위에서는 '재판외 법률서비스'를 독립적으로 제공하도록 하고 있는 데, '법률서비스법'에서는 리걸테크를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독일 법원은 동법의 법률서비스 개념을 넓게 해석해 리걸테크 기업들이 법적 규제로 서비스 제공에 제약을 받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

현재 독일을 포함한 영국, 프랑스 등 다수의 유럽 국가는 변호사가 비변호사와 이익을 공유하는 형태의 사업 모델까지 허용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산업 발전을 적극 뒷받침하는 제도적 지원 아래 우리나라보다 인구 수는 약 1.6배에 불과하지만 법률서비스 시장은 4~5배 큰 규모의 성장을 이루며 빠르게 발전 중이다.

◇치열한 논의 거쳐 플랫폼 허용하며 아시아 리걸테크 대표로 우뚝 선 '일본'

북미와 유럽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발전이 눈에 띈다. 일본 역시 리걸테크 산업이 정착하기까지 법률플랫폼을 중심으로 수많은 논의가 있었다. 일본변호사연합회는 2005년 변호사 광고 플랫폼 '벤고시닷컴' 등장 이후 플랫폼 이용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격론 끝에 '네트워크 사회에서 정보를 모아 판단하는 것이 국민의 상식이며, 시장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지 고민하되, 변호사 이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이용하는 방향'으로 플랫폼 허용을 결정했다. 이를 통해 벤고시닷컴은 2014년 IPO에 성공하며 성장 기반을 다졌고, 이후 일본은 다양한 리걸테크 신기술을 도입하며 혁신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최근 일본 법무성은 'AI를 이용한 계약서 등 관련 업무 지원 서비스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계약심사 서비스가 일본 변호사법 제72조를 위반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해석을 내 업계 주목을 받았다. 이는 일본 내 리걸테크 산업 육성 의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산업 육성 위한 제도 논의 시작하는 '한국'

미국과 독일, 일본의 사례 모두 산업 발전에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나라도 리걸테크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5월, 국회는 법률소비자의 변호사 선택권을 넓히고, 불필요한 규제로 리걸테크 산업 출현을 가로막는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변호사 광고에 대한 금지 유형을 법령으로 규율'하도록 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한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 중소벤처 분야 150대 킬러규제 과제를 확정하며 '신산업 규제' 중 하나로 'AI 활용 법률서비스에 대한 변호사법 동업금지 규정 완화'를 포함했다.

학계에서도 플랫폼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한국경제학회가 개최한 '플랫폼과 전문직역' 경제토론에 참석한 경제학자 92%는 '플랫폼 서비스가 사회 후생에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밝혔으며, 바람직한 정책 방향으로 '민간 플랫폼은 허용하되 전문직역 단체의 의견 수용을 통한 공공성 확보', '민간 플랫폼의 활성화를 염두에 둔 법 제도 개편' 등을 꼽았다.

이렇듯 우리나라도 기술의 효용에 주목하고,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 마련에 활발한 논의가 시작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진다면 국내 리걸테크도 해외 못지않게 눈부시게 발전할 것을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리걸테크 산업 발전은 단순히 기술 발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극심한 정보비대칭 속에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이자 변호사의 업무 생산성을 높여 보다 나은 법률서비스가 이뤄지도록 돕는 일이다. 나아가 누구나 수준 높은 법률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국민과 변호사, 리걸테크 업계 모두의 이로운 변화를 위해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글로벌 리걸테크 목록에 우리나라 기업이 오를 날도 머지않았다.



정재성 로앤컴퍼니 부대표(공동창업자) js.jung@lawcompany.co.kr

〈필자〉고려대에서 산업공학과 금융공학을 전공으로,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다. 졸업 후 약 3년간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하고,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변화를 일으키고자 2012년 김본환 대표와 '로앤컴퍼니'를 창업했다. 현재 로앤컴퍼니는 국내 1위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을 비롯해 법률 정보 검색 서비스 '빅케이스' 등 법률서비스의 대중화와 선진화에 기여할 서비스를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