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연구개발(R&D) 과제 수행 현장에서는 내년 예산을 미리 당겨쓰거나 일부러 올해 예산을 내년으로 미뤄 집행해야 더 효율적인 상황도 생깁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죠. '아르파-H(ARPA-H) 프로젝트'가 혁신 연구개발 과제 운용에서 긍정적 사례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열린 아르파-H 프로젝트 공청회에서 만난 한 연구자가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오 분야 양대 핵심 국책과제 중 하나인 아르파-H 프로젝트가 정부 R&D 예산 삭감 기조 속에서 주목받고 있다. 실패 가능성이 크지만 성공하면 파급력이 큰 분야를 선정해 예산을 집중 투입하는 임무중심형 연구개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전체 과학계에 미칠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미정복질환을 극복하기 위한 혁신 신약 개발 △필수의료 지역완결체계 구축 △디지털 바이오헬스 산업을 위한 초격차 기술 개발 등을 목표로 내걸었다. 언뜻 들어도 정말 될까 싶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실패를 전제하더라도 성공을 향해 최대 역량을 끌어올리는 기조여서 실제 어떤 내용의 사업이 기획될지 관심이 크다.
아르파-H는 기존 연구개발 사업보다 훨씬 혁신적인 만큼 예산 운용도 기존 틀을 탈피했다. 사업 프로젝트매니저(PM)가 전적으로 권한을 갖고 예산을 유동적으로 집행할 수 있다. 사업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 일환이다.
이는 사업을 주관하는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기재부, 과기부 등 유관 부처의 이해와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국회라는 관문이 남았다.
정부 R&D 과제에 대해 '실패를 인정해주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십수년간 이어져왔다. '실패도 자산이다', '실패가 성공의 발판이 된다'는 지적은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역설적으로 실패도 자산으로 인정해주는 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셈이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카탈린 카리코 독일 바이오엔테크 수석 부사장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술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기여한 사례는 업계에 큰 울림을 줬다. 파급력 큰 연구개발이 얼마나 길고 어려운 터널을 지나야만 빛을 보는지 잘 보여준 사례다.
기존 R&D 체계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 분명히 있다. 연구 책임자가 연구 참여자에게 제대로 급여를 책정하지 않는 문제는 만연하다. 성과 중심으로 사업이 선정되지 않고, 선택과 집중이 아닌 나눠주기식 예산 집행 등의 기존 관행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중간 결과물 확보만으로 추후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점을 간과하고 최종 성공 여부로만 판단하는 낡은 잣대도 여전하다.
아르파-H는 출발부터 기존 잣대를 탈피하는 시도를 했다. 10년간 1조9314억원 예산을 투입하지만 기존 심사 체계로는 평가하기 불가능한 전혀 다른 성격의 사업이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았다. 민간전문가를 프로젝트매니저(PM)와 사업단장으로 선발하고 이들이 사업 기획·수행과 예산집행을 최대한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권한도 준다. 기존 연구개발 과제에서 보기 드문 체계다.
아르파-H 사례가 혹여나 실패하더라도 사업 성공을 위해 달려온 여정을 정말 자산으로 인정해주는 문화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그만큼 '과정'에 대한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제대로 자리잡아야 한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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