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온라인도매시장 출범, 농산물 유통구조를 디지털로 혁신하다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우리의 삶과 디지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과거 대면 주문 방식에서 키오스크 주문으로, 은행을 방문해야 거래가 가능했던 것에서 인터넷·모바일 뱅킹으로, 더 나아가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까지 디지털 기술은 이미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과거보다 편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농산물 유통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인터넷 강국이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온라인쇼핑동향을 보면 2022년 농축수산물 온라인 쇼핑 규모는 9조 5000억원이다. 조사 첫해인 2017년 2조 4000억 원과 비교하면 5년간 약 4배로 성장한 것이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미 우리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전날 주문한 신선한 농산물을 다음 날 배송받은 경험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러나, 농산물 도매유통은 아직 과거의 유통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1976년 제정된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에 근거한 1985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개장을 통해 농산물 유통정책의 시작을 알렸다. 가락시장 개장을 시작으로 전국에 설립된 총 32개 공영도매시장은 전국 산지에서 생산된 다양한 농산물을 수집, 다시 전국 소비지로 분산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매점매석을 일삼던 도매상의 폐해로부터 출하 농업인을 보호하는 목적과 경매를 통한 효과적 가격 발견 기능도 함께 달성했다.

현재 공영도매시장은 청과물의 절반 이상이 경유하는 농산물의 대표 유통경로로 정착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40여년간 도매유통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항상 함께했다. 그동안 정부는 출하자→도매법인→중도매인→소매상 순서로 요약되는 유통경로를 단축하기 위해 출하자로부터 농산물을 매매해 중개하는 시장도매인 제도 도입, 가격 변동성 완화를 위한 정가·수의 매매 확대 노력 등 도매유통 구조개선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도매시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소수의 유통 주체가 공유함에 따른 기득권 문제와 수도권 특히, 가락시장으로의 농산물 집중 현상에 따른 물류 비효율성 등은 극복하기 어려웠다.

우선, 거래 단계마다 상품이 이동하기 때문에 물류비용과 수수료 등이 과다하게 발생한다. 명절, 김장철 등 농산물 수요가 급증하는 시기에는 홍수 출하로 도매시장에 들어온 농산물이 7~8시간 경매 대기를 하기도 한다. 제 값을 받고자 가락시장으로 출하된 농산물이 다시 지방으로 되돌아가는 역물류 현상도 빈번하다.

현행 농안법 체계는 제한된 구역에서 제한된 유통 주체간 거래만 허용하는 한계도 존재한다. 개설자로부터 지정받거나 허가받은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매매참가인간 거래만 가능하다. 산지에서 농산물을 생산한 출하 주체는 도매시장에서 직접 판매할 수 없고 도매시장법인에 위탁해야만 한다.

정부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기존의 농산물 도매유통 구조를 혁신하기 위해 온라인에 또 하나의 가락시장을 만드는 방법을 고민했다. 올해 11월 30일 출범 예정인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이다. 온라인도매시장에서는 기존 농안법에 따른 거래나 경쟁제한이 모두 해소, 전국의 다양한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공간 제약없이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해진다.

9월 규제샌드박스 농안법 실증특례로 지정받은 온라인도매시장에서는 산지 출하주체도 직접 판매자로 참여할 수 있으며,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은 기존의 거래제한이 사라져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발굴이 가능해진다. 10월 16일부터 시작된 파일럿 거래에서 이미 이러한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산지 농산물유통센터(APC)에서 마트로 바로 농산물이 이동하거나, 도매시장법인이 위탁받은 농산물이 그 시장의 중도매인이 아닌 가공업체로 산지에서 바로 배송되는 사례들이 그것이다. 아직 시범단계로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이미 기존 유통경로를 혁신한 사례들이 하나 둘 나오는 것은 긍정적 신호다.

기존 도매시장과 온라인 도매시장 유통구조 차이(자료 : 농림축산식품부)
기존 도매시장과 온라인 도매시장 유통구조 차이(자료 : 농림축산식품부)

온라인도매시장은 기존 '오프라인' 도매시장보다 수수료도 낮게 설정, 온라인 거래의 취지를 최대한 살렸다. 거래플랫폼 이외에 별도 공간이나 시설이 필요없어 시설이용료도 발생하지 않는다. 판매자와 구매자간 최적 배송을 지원하기 위해 민간 물류 플랫폼과 연계해 서비스도 제공한다.

온라인도매시장이 출범하면 산지 조직은 기존 거래선을 유지하는 가운데 또 하나의 출하처가 생기는 효과가 발생, 상대적으로 유리한 판매경로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더해 위탁수수료 등 비용이 감소하기 때문에 실질적 수취가격 상승이 기대된다. 기존 유통 주체들은 경쟁이 확대돼 농산물을 가장 효율적으로 유통할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결국 온라인도매시장 출범에 따른 혜택은 농업인과 소비자가 나눠가지게 된다.

온라인도매시장과 함께 산지도 바꿔나갈 계획이다. 2027년까지 스마트 APC를 100개소 구축하고, 산지 조직화의 핵심 역할을 담당할 생산·유통 통합조직도 육성한다. 스마트 APC의 입·출고 및 재고정보, 온라인도매시장 거래·물류 정보 등 디지털화된 생산·유통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해 민간이 주도하는 농산물 유통 혁신과 신산업 창출 사례 확산으로 이어지도록 지원한다.

온라인도매시장은 세계 최초로 운영되는 사례다. 우리와 도매유통 구조가 유사한 일본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과거 가락시장 개장이 지난 40여 년의 농산물 유통정책 시작을 알렸다면, 올해 출범하는 온라인도매시장은 앞으로 40년을 책임질 새로운 유통 혁신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농업인은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생산·공급하고, 소비자는 합리적 가격으로 안심하고 농산물을 소비하는 미래의 대한민국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도 정부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며 온라인도매시장이 안정적으로 조기 안착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필자〉1968년 전북 정읍 출생으로, 호남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기획재정부 경제예산심의관, 차관보 및 통계청장 등 요직을 거치며 경제·예산 분야 경제정책 통으로 알려져 있다. 기재부 예산실 농림해양과에서 농정 현안에 대한 실무 경험을 두루 쌓고, 심의관 시절 농정 예산 수립·편성 등 업무를 수행해 농림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