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천연물의약품에 기반한 혈관신생 억제제의 새로운 방향

김민영 안지오랩 대표
김민영 안지오랩 대표

외과의사이자 암 연구자였던 주다 포크만 박사는 1971년 발표한 논문에 '암은 주위 혈관을 끌어와 커진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를 '혈관신생(Angiogenesis)'이라 명명했다. 암에 혈액 공급을 차단하면 성장을 멈추게 할 수 있고, 심지어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이후 많은 연구가 이뤄져 혈관신생을 일으키는 다양한 인자들이 발견됐고, 혈관신생을 억제하는 약이 개발됐다.

2004년 혈관내피 성장인자(VEGF)를 억제하는 첫번째 혈관신생 억제 약인 베바시주맙(아바스틴)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블록버스터 항암제가 됐다.

혈관신생 억제제는 암세포에 직접 작용해 암을 사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암세포에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는 새로운 혈관을 만드는 것을 방해, 궁극적으로 암을 사멸시키는 약물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일반 화학요법 약물에 비해 부작용이 적다. 현재까지 개발된 혈관신생 억제제는 모두 주사제다.

혈관신생 억제제로 승인받은 약은 대부분 강력한 혈관신생 인자를 타깃으로 개발돼 오래 사용하면 효과가 떨어진다. 혈관신생을 일으키는 경로가 다양하므로 강력한 혈관신생 인자 하나를 막더라도 다양한 혈관신생 인자들에 의해 다른 혈관신생 경로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최근 혈관신생 억제제는 한가지 인자만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이상 혈관신생 인자를 타깃으로 개발되고 있다.

천연물의약품은 다양한 활성 성분이 포함돼 있는 다중성분-다중표적(MCMT)이 특징이어서 단일 타깃 혈관신생 억제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또, 기존 단일 타깃 혈관신생 억제제와 같이 사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혈관신생 관련 질환은 대부분 난치성 질환이므로 단기 투여로 치료되지 않으며 환자에게 오래 투여해야 한다. 효과는 물론 장기 투여에 따른 안전성이 중요하며, 경구 투여가 편리하다. 천연물의약품은 경구 투여가 가능하고, 장기 투여에도 안전해 혈관신생 억제제로 좋은 후보 물질이다.

천연물의약품은 미국, 유럽 등 세계 주요 시장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WHO에 따르면 세계 천연물의약품 시장 규모는 2019년 약 40조원에서 2026년 약 53조원으로 성장이 예상된다. 혈관신생 연구 기업들이 천연물의약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혈관신생 연구 기업인 안지오랩은 파이프라인 후보물질 중 천연물의약품을 우선 개발하고 있다. 현재 임상 단계에 있는 천연물의약품 ALS-L1023은 다중 타깃 혈관신생 억제제로 망막색소상피세포가 산화스트레스에 의해 사멸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습성 황반변성 환자에 대한 임상 2상 시험에서 기존 anti-VEGF 안내주사제와 병용 투여해 현저한 시력 개선 효과를 확인했다.

혈관신생 관련 질환은 약 70여 종류가 보고되고 있어 혈관신생 억제제는 다양한 질환 치료제로 개발될 수 있다. 안지오랩은 천연 물질 기반 혈관신생 억제제를 지방간, 삼출성 중이염에도 적용해 신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비알콜성 지방간염 환자를 대상으로 한 2a임상시험에서 간의 지방증 감소, 섬유화 개선 효과를 확인했다.

천연물의약품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천연물의약품에 함유된 다중 성분을 규명하고 기전을 밝혀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관련 자료도 준비해야 한다. 천연물의약품에 기반한 혈관신생 억제제가 임상시험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제품화가 이뤄지면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민영 안지오랩 대표 mykim@angiola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