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에서 오랜 시간 해결되지 않은 대표적 난제 중 하나로 급발진을 들 수 있다. 내연기관에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로 넘어가면 해결되지 않을까 했던 막연한 기대는 연이은 급발진 의심 사고 소식에 무너지고 말았다. 자동차 생산업체는 대중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급발진 의심사고에 대해 결코 차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스스로 급발진 예방 기술을 특허출원하고 있을 정도로 고심하고 있는 정황은 뚜렷하다.
급발진 여부를 판단하는 데 핵심적 기준으로 사용되는 장치에는 EDR이라고 불리는 사고기록장치가 있다. 사고기록장치는 자동차의 에어백 제어모듈이나 엔진내 두뇌 역할을 하는 전자제어유닛(ECU) 등으로부터 특정 사고 이전 일정 시간 동안 차량 속도, 충돌시 속도변화, 브레이크 페달 작동, 가속페달 또는 스로틀밸브 변화량, 에어백 작동, 안전벨트 착용 여부 등에 관한 기록을 저장하며, 그러한 정보를 필요시 인출해 확인할 수 있는 모드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 급발진 의심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거나 크게 다친 경우가 속속 보도되면서 대중의 의구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왜 급발진 의심 상황시 차량의 거동은 운전자의 평소 운전패턴과는 전혀 다른 모습, 예를 들어 엄청난 속도로 폭주하거나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그것을 운전자는 전혀 제어할 수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일까? 이웃 차량의 블랙박스나 CCTV에 의해 급발진 의심 차량이 엄청난 먼지를 날리며 폭주하는 모습이 낱낱이 녹화되고 있는 시대에 왜 EDR은 언제나 운전자의 과실만을 지목하고 있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회사들의 입장은 대단히 완고하다. “우리 개는 안물어요”라는 견주의 방심이 개물림 등 인명사고를 초래하듯, “우리가 만든 차는 급발진하지 않는다”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호언은 사람들을 오히려 불안하게 하고 있다. 차라리 고객의 인명과 재산에 손실이 있었음에 송구함을 표현하고, 아직 그들이 찾아내지 못한 사고원인은 없는 지,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예방기술은 없을 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소비자와 소통하는 자세가 아쉽다고 하겠다.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고속도로순찰대 간부와 그 가족이 탑승한 차량이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통제불능에 빠져 결국 모두 사망한 일이 있었다. 당시 사고 직전 생생한 통화녹음이 공개되면서, 일반인도 아닌 경찰조차 무모하게 질주해나가는 차량을 멈춰세울 수가 없었음이 드러났다. 후일 가속페달이 차량용 카펫으로 인해 움직이지 않았을 수 있다는 추정 등과 함께, 결국 제조사는 10억달러 이상을 지불했고, 대대적인 리콜과 함께 무너진 고객의 신뢰를 되찾는 데 수년의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이러한 문제의 시발점은 불리한 정보 은폐와 리콜과 관련된 안전문제에 대해 소비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데 있었음이 밝혀졌다. 결국 불리한 정보에 대한 솔직한 공유와, 관련된 기술의 즉각적 개발과 대처가 없었기에 해당 자동차 회사는 자칫 시장에서 쫒겨날 뻔한 위기를 겪게된 것이다.
요즘 연구개발(R&D) 혁신에 관한 논의가 많다. 사물의 근본원리를 밝히는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과 함께, 사람들의 일상에서 해결되지 못한 장기 미제들을 과감한 투자로 해결해 나가는 도전적 연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정직하지 못한 기업은 발붙일 수 없고, 문제를 인정하되 적극적으로 해결을 위한 연구개발에 앞장서는 기업은 성장하는 풍토도 필요하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