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2월 18일.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무총리와 12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대폭 개각을 단행했다. 국무총리서리에 노신영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부장을 발탁했고,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등 경제부처 장관들은 대부분 유임했다.
개각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 30분 진의종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전 대통령에게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개각 발표 전까지 청와대와 관가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부처마다 장관 하마평이 무성했다.
개각에서 과학기술처 장관에 김성진 체신부 장관, 체신부 장관에 이자현 민정당 국회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 “총선이 끝나자 정치 상황 변화에 대응해서 국무총리에 노신영 국가안전기획부장을, 민정당 대표에 12대 국회에 전국구로 진출한 노태우 의원(전 대통령)을 임명하는 등 정부 여당의 체제 개편을 단행했다.”(전두환 회고록2)
황선필 청와대 대변인은 개각 명단을 발표한 후 “새 정부는 능력과 청렴, 세대교체라는 세 가지 원칙에 따라 내각을 구성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개각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전 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인 김성진 과학기술처 장관이었다. 김성진 장관은 전임 이정오 장관의 육사 2기 선배였다. 이정오 전 장관은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4년 6개월여를 재임, 5공화국에서 최장수 기록을 남기고 퇴임했다.
인천 출신 김성진 장관은 육사 11기로,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는 육사 스타였다. 육사에서 그는 '공부의 신'으로 불렸다. 입학에서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11기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육사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를 거쳐 육사 교수로 후배들을 지도했다. 미국 유학을 떠나 일리노이대학교와 플로리다대학교에서 각각 물리학과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했고, 1973년부터 미국 대사관 국방무관으로 근무했다. 1980년 육군 준장으로 예편한 후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과 제1차장, 제2차장을 거쳐 국방과학연구소장으로 일했다. 1983년 10월 최순달 체신부 장관 후임으로 제33대 체신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당시 체신부는 김성진 장관 유임을 믿고 있었다. 개각설이 나돌던 18일 오후 3시 김성진 장관은 청와대에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체신부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전 대통령은 체신부 업무보고를 받고 “국내 기업이 개발한 국산품을 정부가 우선 구매해 기업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전자통신분야 첨단기술 개발에 적극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성진 장관은 이날 청와대에서 개각과 관련해 어떤 언질도 받지 못했다.
김성진 장관은 개각 발표 후 급히 체신부 간부회의를 열고 “그동안 수고 많았다. 오늘 청와대에서 업무보고를 하면서도 개각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전 대통령과 김 장관의 일화 하나. 1969년 12월 육사 11기 가운데 가장 먼저 대령으로 진급한 전두환 대령은 1970년 열린 동기 동창회에서 김성진 중령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육사 4년 동안 자네가 늘 1등을 했지. 나는 육사 졸업하고 15년 뒤에야 겨우 자네를 따라잡았네.” 좌중에는 폭소가 터졌다.
전 대통령은 개각 이튿날인 19일 오전 10시 청와대에서 노신영 국무총리를 비롯한 신임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전 대통령은 이날 “국민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은 김성진 장관은 이날 오후 2시 과학기술처 대회의실에서 취임식을 열고 업무를 시작했다.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2000년대 조국 선진화를 위해 첨단 과학기술 개발과 기술혁신, 과학기술 인력 양성 등이 가장 중대한 과제”라면서 “이런 정책을 앞으로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처 당시 고위 인사 A씨의 말. “체신부 장관을 지낸 김 장관은 전두환 대통령과 육사 동기생으로, 육사를 수석 졸업한 수재였다. 육사 교수로 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인지 김 장관 부임 후 과학기술처 위상과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김성진 장관은 부처 간 이견이 있으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다.
3월 19일.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과학기술처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받았다. 전 대통령은 이날 “과학기술 발전이 우리나라의 흥망을 좌우한다”면서 “과학기술 분야를 국력신장의 핵심으로 삼아 적극 육성해 달라”고 당부했다.
전 대통령은 “선진국 과학기술자들과의 유대 강화를 통해 첨단기술과 기술정보를 빨리 받아들이고 효율적인 과학기술 인재 양성계획을 수립, 실천해 나가야 한다”면서 “국책연구개발사업은 전문가들 의견을 수렴해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국가 과제인 수입대체 촉진을 위한 노력을 병행하라”고 말했다. 전 대통령은 “국책 연구기관과 민간기업 간 긴밀한 협조를 통해 연구 결과를 기업이 제품화해서 세계시장에 수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과학기술자가 신제품을 개발할 경우 보상해 주는 방안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김성진 장관은 업무보고에서 “2000년대 과학입국 실현을 위해 연구원 수를 인구 1만명 당 30명인 15만명으로 늘리겠다”면서 '과학기술인 장기수급계획'과 2000년 과학기술 청사진인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을 각각 수립해 추진하겠다” 밝혔다.
김 장관은 또 “5대 국가기간전산망 사업과 기술정보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컴퓨터 이용기술 확대 등 정보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면서 “대덕연구단지를 국제 수준의 연구도시로 만들기 위해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민간연구소 등을 입주시키고 연구소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보고했다.
김 장관은 “올해 450억원을 투입해 반도체와 컴퓨터 등 11개 분야에 대한 기술개발을 촉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보고한 과학기술처의 주요 업무 계획은 다음과 같다.
△과학기술 인력 양성=2000년대를 향한 '과학기술인 장기수급계획'을 오는 9월까지 수립하고 현재 연구원 3만2000명을 2000년까지 15만명으로 늘린다. 2000년까지 핵심연구 책임자를 1만5000명 확보하고 고급두뇌 공급 촉진을 위해 과학기술대학의 대덕 이전과 함께 재학생 수를 늘리고, 박사 과정 중심으로 운영한다. 과학기술대학을 과학부, 공학부, 기술부 등 3개 학부로 나눠 1986년부터 신입생 540명을 뽑아 영재 교육을 실시한다. 과학기술자의 국내외 연수를 확대하고, 올해 355명의 재외과학자를 유치하며, 기초과학연구촉진을 위해 78억원을 지원한다.
△국책연구 개발=올해 정부지원 300억원과 150개 기업 출연 등 450억원을 투입, 반도체·컴퓨터와 신소재 개발, 에너지절약 기술개발, 정밀화학, 유전공학 기술개발 등 11개 분야에 대한 기술개발을 촉진한다.
△산업기술개발=올해 벤처캐피털과 금융기관을 통해 1975억원의 기술개발 자금을 지원하고, 중소기업 기술개발을 위해 무담보 기술신용 보증제도를 도입한다. 산업현장 기술 고도화를 위해 금형과 주물, 열처리 용접도금 염색가공 등 6개 분야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기계연구소 기업기술지원센터기능을 강화한다. 유망중소기업 300개를 발굴·지원하고 현장 애로사항 파악과 지원을 위해 서울 구로, 경기 반월, 경남 창원, 경북 구미공단에서 기술진흥지역협의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대덕연구단지 활성화=2000년대 국제 수준의 연구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1987년까지 한국과학기술원 등 5개 정부출연연구기관과 한국화약 등 15개 민간연구소, 과학관 등 3개 기관을 입주할 계획이다. 연구소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20개 국립시험연구기관 활성화를 추진한다.
△정보산업 육성=5대 국가기관전산망 사업과 기술정보 DB 구축 확대, 컴퓨터 이용기술 확대 등 정보산업을 중점 육성한다.
△원자력 안전=1990년을 목표로 방사성 폐기물 처리를 위한 육지처분장을 건설하고, 핵연료기술 개발을 통해 1989년까지 경수로용 핵연료를 국산화한다.
△국제협력=첨단기술 산업화를 위해 한미산업기술재단과 한일기계기술훈련원을 설립한다.
△과학기술 기반 확충=과학기술 전시회와 청소년 과학경진대회 개최, 종합과학관 건설, 기상업무 현대화사업 등을 적극 추진한다.
이현덕 대기자@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