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산업 성장세에 제동이 걸렸다. 배터리 기업들이 매 분기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질주했지만, 경기침체에 따른 전기차 수요 위축에 발목을 잡히는 모습이다. 완성차 회사가 배터리 주문을 줄이면서 국내 이차전지 기업도 생산량 조정에 돌입했다.
단기적 실적 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등이 전기차 생산 계획을 연기하면서 배터리 수요가 기대치를 밑돌 것으로 보인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올 4분기와 내년 경영 환경은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산업 중장기 성장성은 밝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일시적 부침에도 세계 주요국의 친환경 정책과 전기차 전환 흐름은 유효하기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의 누적 수주잔고는 1000조원을 돌파, 향후 10년치 일감을 넉넉히 쌓았다.
업황 둔화 기간 동안 차분히 내실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 기업들은 그동안 배터리 공장 증설과 이를 위한 자금 마련, 원재료 수급 등에 주력했다. 이제는 단기 플랜 수립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제품 품질 강화와 공급망 구축 등 근본적인 경쟁력을 키우는 전략이 필요하다.
매출 감소와 수익성 악화에도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인 연구개발(R&D) 투자를 축소해서는 안 된다. 중국 이차전지 기업들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중심으로 점유율을 확대, 국내 업체들이 우위에 있는 프리미엄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적극적인 투자로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하는 움직임이 중요하다.
R&D 역랑 강화를 위한 배터리 인력 충원도 중요한 과제다. 배터리산업협회에 따르면 이차전지업계 인력 부족 규모는 2021년 기준 4000명 수준이다. 향후 시장 규모가 더 커지면 인력 수급 불균형 심화가 예상된다. 배터리협회 차원의 '배터리 아카데미'나 대학 학과 개설 확대 등으로 중장기적인 인력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시장 급성장 과정에서 수급 경쟁 과열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한 광산과 핵심 소재 등의 투자 가치를 재조정하는 작업도 중요한 문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해외우려기업(FEOC) 규정 연내 발표가 예상되는 만큼 핵심 광물 채굴·가공에서 공급망 충격이 없도록 후속 대응책의 면밀한 검토도 이뤄져야 한다.
급하게 먹으면 체하기 마련이다. 업황 둔화 시기를 숨을 고르면서 사업을 재점검하는 기간으로 설정하고 미래를 준비, 향후 시장이 반등하는 타이밍에 맞춰 재도약해야 한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
-
이호길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