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을 질병으로 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7년 '비만에 대한 WHO 자문 보고서'에서 비만을 질환으로 정의했다. 미국의사협회도 2013년, 비만을 다양한 병태생리적 문제를 동반한 질병 상태라고 공식 규정했다.
국내에서는 2019년 1월부터 병적비만(BMI 35 이상) 환자나 심혈관질환, 제2형 당뇨병, 수면무호흡증, 천식 같은 대사질환을 앓으면서 BMI 30 이상인 환자에게 비만 수술을 시행할 경우 요양급여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의 헬스케어분야 컨설팅기업인 아이큐비아는 2035년까지 세계인구 절반 이상이 과체중, 4명 중 1명은 비만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식이요법과 운동 등으로 생활습관을 개선해 정상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대인의 삶에서 생활습관을 고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유전적 소인이나 다른 질병 때문에 비만을 겪는 사람들은 체중을 감량하기가 훨씬 어렵다.
비만치료제가 시장에 나와 새로운 노다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식욕 억제나 지방분해 등의 작용을 하는 다양한 비만치료제들이 개발되고 있다. 최근에는 '당뇨병 치료제'를 기반으로 한 비만치료제가 인기를 끌고 있다.
당뇨병 치료로 시작된 비만치료제, 어떤 종류가 있으며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보자.
◇당뇨병 기반 비만치료제의 1등 주자, '삭센다'
현재 국내를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비만치료제는 덴마크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에서 2017년에 출시한 '삭센다(Saxenda)'다.
노보노디스크는 2022년 삭센다 매출이 약 2조원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이는 비만치료제 시장규모의 과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우리 몸은 음식물을 섭취하면 소장에서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Glucagon-Like Peptide-1, GLP-1)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는 췌장에서 혈중 포도당 농도를 낮추는 호르몬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한다.
또 GLP-1은 시상하부에도 작용해 식욕을 떨어뜨리고 포만감을 높인다. 혈당 저하와 식욕 억제 효과라는 역할이 체중 감량에 알맞아 보이지만, GLP-1은 체내에서 분해효소로 인해 1~2분 만에 사라진다는 약점이 있다.
삭센다는 이러한 GLP-1을 모방하면서도 반감기를 13시간까지 늘린 리라글루티드를 주성분으로 한다.
처음에는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약 5%의 체중감소라는 효과를 가진 덕에 비만치료제로 인기를 얻게 됐다. 매일 주사를 직접 놓아야 하는 단점과 메스꺼움, 속쓰림 같은 부작용이 있지만, 지금도 많은 비만 환자에게 사랑받는 중이다.
◇삭센다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위고비와 마운자로
노보노디스크는 2021년, 삭센다보다 더 유망한 게임체인저 '위고비(wegovy)'를 내밀었다. 미국 기업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13㎏을 감량하는 데 활용했다고 언급해 화제가 된 위고비는 삭센다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삭센다는 매일 한 번 주사로 투여해야 하는 단점을 갖는다. 하지만 위고비의 주성분인 세마글루티드는 삭센다의 리라글루티드보다 체내 흡수가 더 잘 돼 경구제로도 복용할 수 있다. 덕분에 위고비는 주 1회 주사제 또는 매일 1회 경구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이 위고비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대항마도 있으니, 바로 미국 제약회사 일라이릴리(Eli Lilly and Company)에서 개발한 '마운자로(Mounjaro)'다.
티르제파타이드가 주성분인 마운자로는 위고비와 마찬가지로 주 1회 투여하는 GLP-1 수용체 작용제다. 다만 티르제파타이드는 세마글루티드처럼 GLP-1을 모방할 뿐만 아니라, 인슐린분비자극폴리펩타이드(GIP) 호르몬도 추가로 자극한다.
마운자로는 제2형 당뇨병 치료 목적으로만 사용됐지만, 지난 11월 9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젭바운드(Zepbound)'라는 상표명으로 승인하면서 비만치료제로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일라이릴리는 마운자로 투약과 생활 습관 중재를 72주 동안 병행하니, 시작 시점보다 체중이 26.6%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68주간 16.0% 체중 감소율을 보였던 위고비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기도 했다.
◇비만치료제는 다이어트약이 아니야, 맹신은 '금물'
당뇨병과 비만치료제를 겸하는 이 약들은 현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제약사들은 공장을 증설하고 생산량을 늘려 수급 문제를 점차 완화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위고비나 마운자로의 국내 출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만치료제에 좋은 점만 있지는 않다. 우선은 가격이다. 삭센다도 국내 기준 한 달 처방에 수십만 원이 드는데, 위고비는 미국에서 약 1350달러 즉, 170만원이 넘는다.
마운자로가 위고비보다 저렴한 130만원 선이라고 하지만, 약을 끊으면 다시 체중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렇게 비싼 약을 평생 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더 저렴한 복제약이 나오려면 약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모든 약물이 그렇듯 GLP-1 수용체 효능제 역시 이상 반응이 생길 수 있다. 이미 알려진 증상으로는 오심과 구토 설사 등이 있으며 두통과 피로, 당뇨병성 망막증과 췌장염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비록 이 약들이 이전부터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됐으니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하지만, 시판 초기인 만큼 비만 치료의 여러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만큼의 이익을 가져올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전문가들은 비만치료제에 대한 사람들의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정상 체중인 사람들의 오남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비만 치료가 여전히 미용을 목적으로 한 다이어트와 혼동돼, 비만치료제 역시 '다이어트약'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알려질 수 있다.
이에 대한비만연구의사회는 “비만치료제는 엄연히 치료가 목적”이라며 “올바른 사용법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글:정유희 과학칼럼니스트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