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봉 시인, 세번째 시집 '물속에 두고 온 귀' 펴내…“한층 투명하고 고요한 언어로 삶의 신비 조명”

1981년 박기영·안도현·장정일 시인과 함께 '국시' 동인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한 박상봉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물속에 두고 온 귀'를 펴냈다. '물속에 두고 온 귀'는 첫 시집 '카페 물땡땡'과 두 번째 시집 '불탄 나무의 속삭임'에 비해 더욱 고요하고 투명하며 선명해진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정호승 시인은 시집 표사에서 “박상봉 시인의 시를 읽으면 가슴이 떨린다. 마치 내가 몰래 훔쳐보고 싶었던 연인의 일기장을 엿보는 듯하다. 그의 시에는 삶의 비밀이 숨겨져 있어 그 비밀을 엿보고 알아차리고 깨닫는 기쁨은 크다. 그의 시는 일상적 삶의 진실에서 나온다. 일상의 상처와 희망에 깊게 뿌리를 내린 그의 시는 인생의 신비에 가 닿아 있다.”고 상찬했다.

박상봉 시인의 세번째 시집 '물속에 두고 온 귀'
박상봉 시인의 세번째 시집 '물속에 두고 온 귀'

'물속에 두고 온 귀'의 핵심 이미지는 '귀'다. 귀는 세상의 울림을 포착하고, 그 울림을 인간 내면으로 증폭해내는 감각기관이다. 이 과정에서 귀는 세상의 울림을 존재의 떨림으로 수용해낸다. 박상봉 시인의 시는 그런 울림과 떨림의 파장에 관한 고백과도 같다.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시인이 일상에서 매순간 마주하는 삶의 모습을 47편의 작품으로 담아낸다. 1부의 시들은 유년기에 잃어버린 '귀(청력)'를 향해 있다. “내 귀는 아이들 곁을 떠나지 못해/저 바다 깊은 물속에 산다”(물에 잠긴다는 것)면서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아득하고 막막한 시공간에 놓인 어떤 존재와 “내”가 어떻게 소통하고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럴 때 시는 존재와 존재를 연결하는 작은 창문이 된다.

박상봉 시인
박상봉 시인

2부 이후의 시에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그 안에 깃들어 있는 또 다른 세상을 표현한다. “빗속에서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젖은 발목이 더 젖어 슬프기도 한 여름”(여름비)은 너무나 투명해서 오히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물속에 두고 온 귀'에 수록된 시들은 “시절이 다 가도록 다시 꽃피지 않는 집 앞의 사랑나무/어둠으로 뒤덮인 마을과 길을 잇는 불빛 아래에서”(유년시첩) 꼭꼭 눌러 적은 간절하고 뜨거운 고백록이다. 그 고백록은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상봉 시인의 세번째 시집 '물속에 두고 온 귀'
박상봉 시인의 세번째 시집 '물속에 두고 온 귀'

“집을 짓는다 나는 주소를 모른다 꽃밭을 만든다 (…중략…) 결별한 어제를 빨아들이고 시냇물을 빨아들이고 싸리꽃 흙길을 빨아들이고 혓바늘 돋는 문장의 거친 호흡으로”(태양 속 아이들).

박상봉 시인은 1958년 경북 청도 출생이다. 1990년 하반기 '오늘의 시'(현암사)에 작품이 선정된 바 있으나 한동안 생활고로 펜을 놓고 지냈다. 1995년 '문학정신' 가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재개했다.

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