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역학의 근본 원리를 실험으로 증명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2023년에도 양자 개념과 관련된 연구가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을 휩쓸었다.
전기와 빛과 같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하나의 물질 단위로 표현할 때 가장 작은 단위를 양자라 한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우주의 끝과 끝이 서로 연결되고, 살아 있는 고양이와 죽어 있는 고양이가 중첩된 상태로 동시에 존재하는 독특한 현상이 일어난다.
DNA 역학 조사, 양자컴퓨터 개발 등 앞으로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기술 혁명은 이 보이지 않는 양자 세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양자 시대를 크게 앞당긴 것으로 평가받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성과, 아토초와 양자점 개념에 대해 알아보자.
◇아토초: 전자가 움직이는데 필요한 아주 짧은 시간
올해 노벨 물리학상의 영광은 아토초 연구에 공헌한 앤 륄리에, 피에르 아고스티니, 페렌츠 클라우스 세 사람에게 돌아갔다.
아고스티니는 1979년에 초역이온화(ATI, Above-Threshold Ionization) 현상을 발견했다. 전자가 레이저의 에너지를 받아 원자에서 튀어나오는 현상을 관찰하다 보면, 필요한 최저의 에너지보다 많은 에너지를 흡수하는 현상을 드물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 초역이온화라 한다.
여기서 여분의 에너지는 전자 자체의 운동 에너지로 변환되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전자를 만들어낸다. 아고스티니가 발견한 초역이온화는 강력장 물리학 연구의 기폭제가 되었다.
아고스티니와 같은 CEA 연구실에 있던 륄리에는 1988년 이온화된 비활성 기체에 적외선 레이저를 비추어 방출된 빛을 측정하던 중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레이저에 노출된 전자는 에너지를 흡수하여 마치 언덕길 위에 놓인 공처럼 불안정한 상태가 되므로 즉시 에너지를 빛의 형태로 방출해 안정한 상태로 돌아간다. 이때 원자에서 방출되는 빛의 파장은 레이저 파장의 정수배이며 배수가 클수록 그 파장의 빛은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배수가 클수록 빛의 강도는 점점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륄리에의 실험에서는 배수가 4배 이하일 때, 빛의 강도가 예상대로 감소했다. 그런데 5배에서 33배까지는 강도가 거의 감소하지 않는 플랫 상태를 유지하다가, 34배 이상은 거의 사라져 버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아토초 펄스를 만드는 데 중요한 다중 '고차조화파'를 처음 관측해낸 것이다. 고차조화파는 1064나노미터의 적외선 레이저를 이용해 극자외선 또는 엑스선 영역에 해당하는 넓은 주파수 영역을 갖는 빛이다.
초역이온화 현상과 고차조화파가 설명되면서, 매우 짧은 시간인 아토초(100경분의 1초)의 시대가 열렸다. 원자와 결합한 전자는 에너지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전자를 움직이게 하려면 고전 역학에서는 전자에 오르막길을 오를 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해법이 달라진다. 전자에 레이저를 쐬면 에너지 비탈길의 형상이 변화하고 한쪽이 오르막에서 내리막이 된다. 양자역학에서는 입자가 고정된 장벽을 통과하는 현상인 '터널 효과'로 인해 비탈길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내리막 쪽으로 전자가 이동한다. 파장이 진행하면서 에너지 언덕이 내리막길에서 오르막길로 변하면, 전자는 오르막길을 오를 만한 에너지가 없어 변화된 언덕의 영향을 받아 급격히 원래 위치로 돌아온다.
이때 전자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원자를 향해 떨어지기 때문에 운동 에너지를 가진 채 원자에 재충돌하는데 이때 방출되는 빛은 원래 이온화에 필요한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 더 짧은 파장을 지닌다. 이 파장이 바로 '아토초 펄스광'이다.
과학자들은 아토초 펄스를 직접 생성하려는 도전에 이르렀다. 펄스광을 실제 산업이나 연구에 이용하려면 단일 펄스광을 만들어 정확한 파장 길이를 측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일 아토초 펄스를 생성하려면 고도의 극초단 펨토초(1000조분의 1초) 기술이 필요했다. 클라우스는 1997년 650 아토초 길이의 단일 펄스광을 실현해 냈다. 2010년에는 전자가 빛을 받아 원자에서 튀어나오는 광전효과를 계측해 21 아토초 안에 전자가 원자 주위의 궤도를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연구는 당초 이론의 계산값과 실험 결과가 맞지 않는다는 문제에 봉착했지만, 오히려 이론의 오류를 밝혀내고 결과적으로 클라우스가 얻은 결과가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후 클라우스는 2017년에는 불과 43 아토초의 펄스광을 만들어내 새로운 물리학 분야 '아토초 물리학'의 문을 열었다.
◇양자점: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다운 색을 띄는 이유
올해 노벨 화학상은 나노미터 수준의 아주 작은 반도체 입자인 '양자점' 연구를 수행한 알렉세이 에키모프, 루이스 브루스, 그리고 모운지 버웬디에게 돌아갔다.
인류는 개념을 몰랐을 뿐, 수천 년 전부터 양자점의 성질을 활용해 왔다. 유리에 금속 같은 불순물을 섞어 색유리를 만들던 장인들은 유리를 녹이거나 냉각하는 온도에 따라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으로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장인도 과학자도 잘 모르는 시대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알갱이들이 흩어진 '콜로이드'가 유리의 색깔을 결정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이 밝혀졌지만, '양자역학'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유리 색의 변화를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한 선구자가 바로 에키모프다. 에키모프는 유리 속 염화구리 결정의 평균 크기를 X선으로 조사하고 빛의 파장 변화와의 관계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그는 유리 속 염화구리 결정의 평균 크기가 유리를 가열한 온도에 따라 2㎚에서 30㎚로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염화구리 결정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흡수되는 빛의 파장이 파란색으로, 즉 파장이 짧은 쪽으로 옮겨간다.
더 나아가 에키모프는 매우 작은 크기의 입자에서는 전자의 행동이 제한된다는 양자역학의 아이디어를 차용해, 유리 색에 해당하는 빛의 파장을 계산해 냈다. 구 소련 과학지에 게재된 에키모프의 연구는 안타깝게도 1981년 미소 냉전 시대의 철의 장막에 봉인되어, 당시 서방의 연구자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 벨연구소에 있던 브루스는 태양광 등 빛에너지를 사용해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분야인 광전기화학 연구를 수행 중이었다. 그는 1983년에 황화카드뮴 나노입자를 만들어 태양광 발전판 위에 도포하던 실험을 하던 중, 용액을 하루 방치하면 빛의 성질이나 반응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브루스는 전자 현미경으로 황화카드뮴 나노입자를 관찰했고, 갓 만들어졌을 때는 평균 직경이 4.5㎚였던 입자가 하루가 지난 후에는 12.5㎚까지 성장한 것을 확인했다. 입자 크기와 상관없이 결정구조 자체는 변함이 없었기에 브루스는 흡수되는 빛의 파장 변화, 즉 나노입자의 색 변화는 입자 크기에 따라 받는 양자역학의 효과 차이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때 브루스는 자신보다 앞서 연구한 에키모프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 는 미국-소련의 냉전이라는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버웬디는 양자점 연구의 막을 본격적으로 연 인물이다. 초창기 양자점의 제조 방법은 불완전한 데다, 완성돼도 크기나 형상이 고르지 않아 결정구조나 전자배치에 결함이 있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양자점의 종류에 따라서는 극저온의 환경을 유지해야 해 비용면에서도 부담스러웠기에 양자점을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힘들었다.
브루스의 연구실에 있던 버웬디는 1993년 양자점끼리 달라붙는 것을 막는 가열된 용매에 유기 금속을 급속히 흘려 넣는 '핫 인젝션(Hot injection) 공법'을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용매에 주입한 유기 금속은 작은 결정을 형성하는데, 이 결정은 용매가 식으면 성장을 멈춘다. 그 후 재차 용매를 가열하면 이미 형성된 핵이 결정으로 성장해 크기가 가지런한 양자점을 얻을 수 있다. 버웬디의 방식은 매우 간단해 양자점에 관한 기초 연구뿐만 아니라 실용화에도 이바지했다.
◇양자점과 아토초 펄스, 앞으로의 활약은?
양자점은 현재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양자점의 크기에 따라 빛의 색을 제어하는 성질을 이용해, 정보통신 및 에너지 획득이 가능한 차세대 디스플레이, QLED를 구현했다.
암 검사 분야는 일부 양자점이 생체 내 특정 단백질이나 핵산(DNA나 RNA)에 결합하기 쉬운 화학적 성질을 가진다는 점에 착안해 발광으로 쉽게 종양을 분별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아토초 펄스는 양자 기술과 반도체, 의학 분야에서 강력한 도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토초 펄스를 사용하면 전자의 운동을 추적하고 제어하는 것이 가능해, 대량 생산이 불가능했던 반도체 재료나 신약후보 물질의 합성 방법도 알아낼 수 있다. 난치병으로 꼽히는 유전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는 데도 아토초 펄스가 활약할 수 있다.
유전병은 비정상적인 상태가 된 전자가 유전자를 손상시키기 때문에 발생한다. 아토초 펄스를 사용하면 X선에 의해 DNA가 손상되는 짧은 순간까지 볼 수 있어, 유전자 손상이 발생하는 과정도 명확히 규명할 수 있다. 양자점과 아토초 펄스가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기대된다.
글: 이형석 과학칼럼니스트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