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와 냉동 김밥, 공통점은 무엇일까?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 사이트 아마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우리나라 상품이라는 점이다.
국내 대장간에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농기구 호미는 원예용 모종삽에 비해 작업 효율이 높으면서도 강도와 내구성도 월등하게 좋다는 평가로 세계 시장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김밥은 참기름과 어묵, 단무지를 과감하게 뺀 대신 유부와 두부 등 식물성 재료로 속을 채운 후 급속 냉동해 해외 소비자 공략에 나섰는데 웰빙, 비건 흐름에 힘입어 인기가 상승하는 중이라고 한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K-컬처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다고 그 힘이 타 분야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K-브랜드 제품 인기는 K-컬처 반사 효과라기보다 그 제품이 가진 고유함과 우수성이 인정받은 결과라고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K-브랜드는 오직 기술력과 성능으로만 승부를 겨뤄야 하는 글로벌 경쟁에서 빛나고 있다. 올초 미국 CES 2023의 스마트 홈, 모바일 기기, 건강 등 28개 혁신 분야에서 최고 혁신상으로 총 23개 제품, 20개 기업이 선정됐다. 제품 수 기준으로 한국 제품은 개최국인 미국보다 많은 12개(52%), 기업 수 기준으로는 20개 중 9개(45%)가 최고 혁신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CES 2024 혁신상도 한국 기업들이 휩쓸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CES 2024 혁신상' 수상기업 총 310개 가운데 143개가 한국 기업으로, 무려 46%의 비중을 차지한다. 드론·무인 시스템과 금융기술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 혁신상을 받았다.
글로벌 기술 혁신 경쟁에서 앞장서려는 우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특화단지'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화단지 입주 기업에 도로, 전력, 용수 시설 뿐만 아니라 인허가 신속 처리, 부담금 감면 등과 같은 파격적 혜택을 제공한다.
정부는 7월 국가 첨단 전략 산업 특화단지 7곳(용인·평택, 천안·아산, 청주, 새만금, 구미, 포항, 울산)과 소부장 특화단지 5곳(오송, 광주, 안성, 대구, 부산)을 선정했다. 2021년 선정된 기존 소부장 특화단지 5곳과 함께 총 17곳의 특화단지가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바이오, 미래차 등 첨단 산업 육성에 필요한 전초 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첨단 산업 유치는 해당 지역에 여러 가지 면에서 큰 호재로 작용한다. 기업이 있어야 좋은 일자리와 인구 유입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대전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지방시대 엑스포'에서도 각 지방자치단체는 첨단 산업 육성에 큰 기대감을 표현했다. 지방시대위원회 정식 출범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행사에서 전국 17개 시·도 지자체는 지역별 핵심 산업 발전 전략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등 열성을 다했다.
특별히 기대되는 점은 특화단지를 중심으로 첨단 산업 생태계가 잘 조성된다면, 이를 발판으로 각 지역 브랜드가 글로벌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 구마모토현이 대만 TSMC 반도체 생산 공장 용지로 결정되면서, 순식간에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 돈으로 4조 원이 넘는 보조금을 TSMC에 제공하고 구마모토대학에 반도체 학부를 개설하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미래 전략 산업 경쟁력을 이른 시일 내에 높이기 위해서는 국제협력을 통한 해외 시장 공략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지역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며, 특히 지역 인구 감소로 인해 지역 경제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때마침 올해 시작된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역혁신 클러스터 2단계 사업에서는 지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이 사업은 클러스터 안의 생태계 조성을 넘어, 지역 내 기업들이 보유한 혁신 역량을 세계 시장으로 확장하기 위해 글로벌 연계형 연구개발(R&D)을 지원한다. 해외 전시회나 상담회 참가를 지원하고, 협력 가능성이 있는 해외 유망 기술을 발굴하는 등 이른바 '글로벌 체력'을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세계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도록 국제 기술협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2010년부터 '코리아 유레카 데이(Korea Eureka Day)'라는 국제 콘퍼런스 행사를 개최하여 국내 기업과 유럽에 있는 산학연이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왔다. 매년 약 200건이 넘는 기술 상담을 진행했고, 이 중 상당수가 2~3년 안에 국제 기술협력 과제로 이어지는 성과를 거뒀다.
국제 기술협력은 지금까지는 주로 유럽 지역 국가들과 이뤄졌는데, 최근에는 중앙아시아, 남미, 미국 등 31개국으로 확대됐다. 한국의 혁신 기술 기업을 세계 시장에 널리 알리고 우리나라가 글로벌 공동 연구에 활짝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계기가 됐다.
KIAT는 국제 기술협력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미국, 유럽 등 6개 지역에 글로벌 기술사업화센터(GCC)를 운영하면서 국내 기업의 해외 사업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해외 기술 수요 파악이나 현지 시장 조사, 협력사 발굴, 글로벌 기술 계약 체결에 필요한 언어, 법률 검토 등 사업화 전체 주기에 걸쳐 도움을 준다. 지난 3년간 994개의 기업의 글로벌 사업화를 지원했다.
KIAT는 앞으로도 글로벌 기술협력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역 특화 기업의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첨단 산업 육성과 함께 지방 시대를 동시에 열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정책이 세계화와 지방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묘수가 되기를 바란다.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bjmin@kiat.or.kr
〈필자〉 전문 과학기술인으로 시작해 국회의원, 기관장으로 선임된 인사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치·정책 분야까지 확장했다. 1959년생으로,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일본 규슈대에서 핵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일본원자력연구소에서 근무하다 1991년 한국원자력연구소 최초의 여성 유치 과학자로 입소했다. 이후 20년간 국내 원자력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과 한국원자력학회장도 역임했다. 지난해 9월부터 KIAT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민간 주도 성장 전략을 뒷받침할 정책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