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우리나라 수출 실적이 13개월 만에 증가세로 전환됐다는 반가운 소식에 들렸다. 이어 11월 반도체 수출 또한 95억2000만달러를 기록, 지난해 8월 이후 16개월 만에 전년 동기 대비 12.9% 증가했다. 올 1분기 206억달러, 2분기 226억달러, 3분기 259억달러에 이어 4분기 중 10~11월 2개월의 반도체 수출액이 185억달러에 이르는 등 수출 증가 추세가 분명해지고 있다. 정보기술(IT) 수요 둔화, 인플레이션 우려 등 세계 경기 불확실성에도 우리 반도체 기업이 수출 회복을 위한 노력을 지속한 결과다.
반등 기미가 약했던 현물시장 주력 제품인 DDR4 D램 가격은 9월 이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고정가격 역시 D램과 낸드 모두 10월 이후 상승세로 전환됐다. 해외 시장조사업체에 의하면 올해 3분기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2분기보다 8.4% 증가하는 등 시장 환경도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이어 내년 반도체 경기는 인공지능(AI) 기반 IT 수요 회복과 맞물려 안정적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PC나 스마트폰 등 개인형 온 디바이스 AI(On Device AI) 서비스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AI는 내년에도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AI 활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은 2027년까지 연평균 30%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결국 반도체 수출 증가 추세라는 방향은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속도를 예의주시해야 할 상황이다. 내년도 금리 동향 등 거시경제 방향성과 스마트폰, PC, 서버 등 수요 회복 속도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지난해 기록한 사상 최대 1292억달러 반도체 수출 실적을 1~2년 이내에 넘어설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약 20%를 차지하는 수출 주력 품목이다. 우리나라의 안정적인 수출성장을 위해서는 수출 품목 다변화가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반도체 등 주요 품목의 수출 확대가 필수다. 이를 위해 수출단가 상승과 물량 확대가 중요한 만큼,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높이고 국내 생산 기반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핵심 요소다. 결국 HBM, DDR5 등 고부가제품 경쟁력 제고를 위한 혁신의 제고와 평택, 용인 등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현재의 글로벌 위상을 유지한 것은 끊임없는 경쟁과 도전을 극복해 온 결과다. '치킨게임'이라고 불리는 여러 위기를 헤쳐 온 성과다. 다만, 최근에는 기업간 경쟁에 머무르지 않고 각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연계되는 복합적인 경쟁의 모습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처럼 앞으로의 경쟁은 지금까지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기에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경쟁에서 우리에게 물러날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올해에 시설투자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전력 및 용수 등의 적시 공급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반도체 주요국도 자국 내 반도체 산업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지원정책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국가간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경쟁국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국가 차원의 대응 전략도 상황에 적응하며 진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정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jhkim33@ksi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