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스퀘어는 2018년 5년 내 IPO를 조건으로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11번가에 5000억원을 투자받았다. CGV는 2019년 CGI홀딩스를 설립하며 2023년까지 CGI홀딩스를 홍콩 증시에 상장한다는 약속을 하고 FI로부터 3336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웨이브도 2019년 FI 투자를 유치하며 2023년 11월까지 IPO 착수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들 회사는 약속을 지키기 못했고 FI와 쉽지 않은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호황기에 투자를 유치하며 약속한 엑시트 조건이 경기침체 상황에서는 너무나 넘기 힘든 벽으로 다가온 것이다. 한편, 케이뱅크도 2021년 실시한 1조2500억원 유상증자에서 FI들에 5년 내 IPO를 하지 못할 경우 대주주인 BC카드가 다시 매입하겠다는 콜옵션과 드래그얼롱을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FI와 계약내용에는 퀄리파이드 IPO라는 조항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세부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일정기간 내 일정 수익률 이상으로 IPO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아무리 투자자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하더라도, 회사가 계획대로 성장하지 못하면 실제로 투자자가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세상의 모든 투자자들은 위험을 최소화하며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그래서 특히 요즘과 같이 대박을 기대할만한 엑시트가 어려운 경제침체 상황에서 투자자는 굳이 리스크를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관망하면서 소극적으로 최소한의 투자만 하려고 한다. 투자를 하더라도 스타트업이나 피투자기업에 부담이 될 만한 조항들을 과거에 비해 더욱 구체적이고 강하게 투자계약서에 추가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플라이 투 퀄리티(Flight To Quality)'전략을 추구하는 것이다. 플라이 투 퀄리티는 주식, 채권, 부동산 등 투자업계에서 쓰는 표현으로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의 투자' 혹은 '안전자산 선호현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에서 상장된 삼성전자 주식으로, 그것도 위험해 보이면 금이나 달러로 투자대상을 안전한 쪽으로 옮기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회사 니드햄의 수석전략가인 로라 마틴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플라이트 투 퀄리티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래서 벤처캐피털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비중을 줄이고, 투자를 하더라도 큰 금액이 필요한 시리즈 C이상의 후기 투자는 최소화하고 적은 금액이 투입되는 초기 단계 스타트업 비중을 늘린다.
밸류에이션을 최대한 낮추고, 신규투자보다 기존에 투자했던 기업 중 실적이 좋고 위험성이 낮아 보이는 회사에 대한 추가투자에 집중한다. 또한 평소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투자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투자계약서에 회사 청산시에는 최우선으로 변제받을 수 있는 다운사이드 프로텍션(투자자 보호조항) 조항을 강화한다. 불확실성이 크고 현금 소진이 빠른 첨단기술 스타트업보다 비교적 안정된 유통플랫폼이나 프랜차이즈 비즈니스 투자를 선호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벤처투자자는 스타트업에 생존전략을 주문한다. 수익성 강화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로 피벗(pivot), 기존 제품의 경쟁력 강화, 효율적 예산관리,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상황별 시나리오 플래닝, 투명하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체계 구축 등 새로운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민첩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같은 위험회피성향은 단기적으로 예상되는 손실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만 안전자산에 대한 과대평가, 기회비용의 손실 등으로 성장동력을 상실하며 오히려 중장기적으로는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한다.
투자자와는 달리 스타트업은 오히려 불확실한 경제상황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현재의 승자를 뒤로 하고 또 다른 영웅으로 태어나게 된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하는 것이다. 테슬라, 애플, 엔비디아 등 세계적 혁신기업들이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며 그렇게 등장했다. 어떤 상황이 와도 결국 뛰어난 기업은 성공하고 부족한 기업은 실패한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은 배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스타트업도 위기의 파도를 헤쳐 나갈 때 비로소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