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중심대학은 '연구를 통해 교육하는 대학'이다. 이들 대학에서는 연구를 통해 교수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한다. 연구중심대학 모델은 19세기 독일에서 시작됐고, 미국으로 건너가 꽃을 피웠다.
오늘날 세계 각국은 최고의 연구중심대학 확보를 위해 뛰고 있다. 과학기술이 곧 국력인 기술 패권의 시대, 미래를 이끌 힘은 최고의 연구중심대학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주요국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 100대 대학 3분의 1을 보유한 미국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대학간 경쟁을 촉발하고 산학협력을 활성화하는 영국, 지역별 우수대학 연합을 선정해 과감한 지원에 나선 독일, 소규모 교육기관 통폐합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프랑스, 국가 주도의 강력한 대학육성을 펼치는 중국 등.
연구중심대학이 수행한 기초연구가 바탕이 돼 인류의 삶을 바꾼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의 창업자 로버트 랭어 MIT 교수는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이 만들 수 있는 혁신을 대표한다. MIT는 명실상부 최고의 연구중심대학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는 MIT가 연구자들을 위한 최고의 지원을 제공한다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 MIT에는 교수 1인당 약 11명 지원 인력이 근무한다. 최첨단 장비를 갖춘 것은 물론, 장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인력도 풍부하다. 연구비 관리, 과제 제안서 작성 등 연구 행정 전반의 지원도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최고의 역량을 가진 연구자들은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다. 이들 연구 성과가 사업화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국내 대학도 최고의 연구몰입환경을 갖춰야만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다. 첨단 연구 장비와 글로벌 수준의 연구 행정 지원이 이뤄지는 '연구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다.
우리 연구자들은 연구비 수주부터 장비 구매, 관리까지 다수의 연구 이외 업무를 부담한다. 사정이 낫다는 UNIST도 교수 1인당 지원 인력이 3명 미만인 게 우리의 현실이다. 가중된 부담은 연구몰입을 방해한다.
이제는 연구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대학으로 전환을 서둘러야 할 때다. 더불어 연구를 잘하는 사람이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지원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탁월한 연구자들이 모여 맘껏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재원이다. 연구중심대학의 재정 개선을 위한 세 가지 방안이 있다. 첫째, 대학의 기초연구비 증액이다. 응용연구에 집중해 온 과거의 형태에서 벗어나, 미래를 준비하는 기초연구의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 전체 국가연구비 중 3.6%에 머무르고 있는 대학의 기초연구 예산을 단계적으로 7% 수준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둘째, 연구간접비 정률제 도입이다. 현재의 간접비 구조에서는 연구몰입환경 조성을 위한 대학본부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기관 매칭, 연구자 재배정 등을 폐지하고 정률 예산을 보장한다면 본부의 연구환경 및 연구자 처우 개선의 기회를 늘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세계적 연구중심대학 육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 세계 100대 대학 10곳 육성을 목표로, 각 대학에 연 2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신설해 운영할 수 있다면, 획기적인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는 걸 여러 분야에 걸쳐 증명해 왔다.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중심대학의 목록에 우리 대학들의 이름이 당당히 자리하길 소망한다.
이용훈 UNIST 총장 yohlee@un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