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예견된 계통 포화, 한전 투자 계획 발표에도 '고착화' 우려

[뉴스줌인] 예견된 계통 포화, 한전 투자 계획 발표에도 '고착화' 우려

전력 계통 문제는 재생에너지 보급·송변전설비 투자 계획의 엇박자로 빚어졌다.

감사원이 지난달 발표한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17년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 '제8차 전력기본계획' 수립 당시 시간 부족 등을 이유로 지역·시기별 재생에너지 보급 전망 등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목표연도인 2031년까지 연도별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목표 총량을 58.6GW로 제시했다. 이는 2017년 설치 용량 11.3GW의 5배가 넘는 수치다.

이어 한전은 2018년, 제8차 전기본을 토대로 '제8차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을 수립하면서 확정된 발전설비 물량인 14.8GW에 대해서만 송·변전 설비 보강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의 설치 위치와 설치 시기 등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 달성에 필요한 나머지 계통보강사업은 차기 계획에서 재검토하기로 했고 그대로 심의 확정했다.

한전은 에너지공단과 2017년 9월, RPS 등록업체 서면조사 및 홈페이지 온라인 조사를 통해 2031년까지 설치 예정인 재생에너지 사업 계획을 조사했다. 그 결과 51.2GW 규모의 신규 발전 계획이 제출됐지만 이는 투자 계획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후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증하면서 재생에너지 투자가 집중된 제주·전라·충청·강원권의 전력 계통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부는 해당 지역에 재생에너지 신규 진입을 최소화하고 전력 수요량이 많은 지역으로 투자를 분산시킨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계통 포화을 벗어나면 사업을 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재생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계통이 포화한 지역이 사실상 재생에너지 요지”라면서 “다른 곳에서 사업을 하면 좋겠지만 부지 선정, 민원 해결 등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얘기”라고 설명했다.

향후 상황도 낙관적이지 않다. 한전은 올해 제10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을 통해 대규모 투자 계획을 수립했지만 제대로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한전의 경영 악화로 56조원에 달하는 투자 규모가 버겁다는 관측이 따른다. 송변전 투자 관련 지역 반발 또한 넘어야 할 산이다. 이미 발전소를 짓고 계통 접속을 기다리는 물량도 3GW에 이른다. 전력계통 문제의 고착화가 우려되는 배경이다.

신규 사업이 궤도에 오를 시점을 장담할 수 없게 되면서 재생에너지 발전 업계는 신규 사업을 포기하는 분위기다. 통상 발전 사업 허가를 비롯해 사업 준비 기간을 최대 3년 정도로 본다.

자료: 감사원 (한전자료 재구성)
자료: 감사원 (한전자료 재구성)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와 기업의 RE100 대응에도 연쇄 파장이 예상된다. 애플, BMW 등 글로벌 기업의 협력사가 받는 RE100 대응 압박은 매년 강도가 더해지고 있다. 직접 투자 또는 재생에너지 발전사로부터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하거나 전력구매계약(PPA)을 맺어 대응하고 있지만 여건은 지속 악화할 전망이다.

정부가 계획한 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도 채우지 못할 공산이 높다. 현 정부 들어 수립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 비중은 21.6%다. 기존 30%에서 큰 폭으로 낮췄지만 이 수치를 달성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9% 안팎이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전력 계통과 재생에너지 문제는 단순히 송배전 설비 투자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민간이 송배전 투자에 참여해 투자비를 정상적으로 회수하고 정산 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무엇보다 재생에너지가 전력망에 들어올 때 안정성을 높일 수 있도록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연계하고 발전·송배전 최적 계획 입지 선정 등이 전제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