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이 되면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감한다. 올해 디지털 세상은 어떠했던가. 미국발 금리인상과 높은 물가로 경제는 앓아 누었다.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 암호화폐, 플랫폼까지 힘들었다. 그 와중에 마이크로소프트(MS)의 거액 투자를 받아 챗GPT를 쏘아올린 오픈AI의 생성AI 충격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미국 빅테크 기업의 재채기 한방이면 세계가 휘청하는 세상이다. 누구는 거기서 기회를 찾고 누구는 거기서 위험을 느낀다. 오픈AI 이사회의 샘 알트먼 해고 및 복귀 파동은 두려움마저 남긴다. 편익이 우선일까, 안전이 우선일까. 혁신이 우선일까, 공존이 우선일까. 대체재가 아니다. 실과 바늘처럼 하나로 봐야 한다. 안전이 없으면 편익도 없고, 공존이 없으면 혁신도 없다. 디지털은 인간의 따뜻함으로 감싸기 전에는 차갑기 그지없다. 편익과 안전, 혁신과 공존의 디지털시대에 따뜻함을 가져올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중국 당나라 시인 왕지환의 한시 '관작루에 올라'(등관작루, 登?雀樓)를 보자. 밝은 해는 산에 기대어 하루를 다하고(白日依山盡), 황하의 물은 바다로 흘러가 돌아오질 않는다(黃河入海流), 천리를 내다보려면(欲窮千里目), 누각 한 층 더 올라야지(更上一層樓). 그렇다. 낮 동안 이글거리던 태양도 밤이 되면 붉게 물들어 달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흙빛으로 쿵쾅거리던 황하의 도도한 물도 거대한 바다에 먹힌다. 모든 것이 멈출 듯 어둠과 두려움이 닥쳐와도 인간은 미래와 희망을 놓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갈 마음조차 과감히 버리고 또 다른 세상을 찾으려 누각의 계단을 또 올라간다.
디지털시대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장은 더디고 산업·시장의 역동성은 떨어져도 포기하지 않는다. 과학기술, 정보통신을 엮은 경제발전은 인간이 오랫동안 지켜온 진화의 방향이다. 모든 것이 정지할 것 같을 때, 더 이상 발전이 없을 것 같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로 다시 힘을 낸다. 그것이 디지털혁신이다. 인공지능(AI)을 장착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끊임없는 도약이다. 특정 기업, 산업, 시장만 잘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동체 모두를 위한 공존의 역사다. AI가 가져올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자. 법과 윤리는 필수 안전핀이다.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AI만능주의 믿음은 과학이 아니고 미신이다. AI가 가진 위험을 정확하게 들춰 통제하며 가야 한다. AI가 인간을 대체하고 파괴해선 안된다. 인간과 AI의 바람직한 협업을 찾고 그것을 조율할 수 있는 핵심 열쇠는 인간이 쥐어야 한다. 재봉틀이 나왔을 때 재단사와 싸웠다. 컴퓨터가 나왔을 때 종이를 만드는 사람과 싸웠다. 자동차가 나왔을 때 마부와 싸웠다. 자동차를 막아선 '붉은 깃발법'이 혁신을 방해한 악법이라 비웃지 말라. 아직도 매년 수천 명이 교통사고로 죽는다. 그 법이 있기에 자동차를 공동체가 수용할 수 있었다. 공존을 장착한 혁신은 인간의 마음을 가진 횃불이 되어 미래를 밝힌다.
시 한수를 더 보자. 조정권 시인의 '독락당'(獨樂堂)이다.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 벼랑꼭대기에 있지만 예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독락당에 산다는 그는 누구일까. 세상의 일을 일으키고 견디고 마친 자다. 이젠 오직 달을 벗삼아 삶을 즐긴다. 세상에 되돌아갈 생각이 없다. 혁신과 공존으로 산업과 시장을 만들고 기여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는 혁신과 공존을 기획, 설계 및 실행했다. 공동체 자원을 합리적으로 획득해 효율적으로 활용했고 그 성과를 나누었다. 뒤에 올 세상을 위해 배려하고 떠났다. 그런 것이 쌓여 디지털시대의 진정한 '인간다움'을 이룬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