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디지털 전환을 통한 탄소중립 촉진 방안으로 '전 산업 부문 탄소감축 촉진', '디지털 부문 고효율화·저전력화', '그린 디지털 생태계 구축' 등 3대 전략을 발표했다.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탄소 배출량 감축 기술을 개발하고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겠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 하다.
특히 '탄소 회계'를 요구하는 세계적 흐름을 고려, 탄소 배출량을 측정·보고·검증(MRV)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온실가스 감축 관리 플랫폼도 준비하겠다는 방침은 그 실효성 측면에서 더욱 주목된다.
탄소 회계는 빌 게이츠 MS 창업자가 말한 것처럼 매년 발생하는 510억톤의 온실가스를 제로로 만들기 위한 지리한 싸움에서, 기업들의 그린 워싱을 막고 탄소 중립 경영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절박감에서 나온 것이다.
탄소 회계로 보면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제품도 지속적 탄소 감축 노력을 하지 않으면, 친환경 제품 타이틀을 잃을 수 있다. 이는 탄소회계가 제품 환경 영향도를 판단할 때, 제조 공정에 필요한 원료의 채취부터 가공, 제조, 수송, 사용 폐기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 분석 및 평가하는 전과정평가(LCA)방법론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기차는 제조 과정에서 동급의 내연기관 차량보다 약 80%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전기차는 차량 배기관에서만 탄소를 배출하지 않을 뿐, 전기차의 동력원인 리튬 이온 배터리 제조와 리튬 광물 채굴 과정에서 많은 탄소를 발생시킨다. 또한 충전 시 필요한 전기도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한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전기차 등을 대상으로 한 탄소 관련 규제에서 LCA에 기반한 제품의 전 수명주기에 대한 탄소배출량 산정을 요구하고 있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배터리 규제, 그리고 미국의 청정경쟁법(CCA)은 제품 생산 시 발생하는 모든 탄소배출량 측정을 요구한다. 해당 국가에 수출하는 기업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정확하게 산정해야 하고 이를 위해 공급망 전체의 탄소 배출량을 파악해야 하는, Scope 3 수준의 탄소 발자국 관리를 해야 한다.
그러나 탄소 발자국 관리를 위해 제품 생산과 관련된 공급망 전체의 데이터 확보와 투명성이 필요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사업장 단위로 탄소 배출량을 관리했기 때문에 제품별 탄소배출량을 산정하기 어렵고, 데이터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거나 공급망상의 기업들이 내부 데이터 공개를 꺼리는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제품을 중심으로 탄소 배출량 계측을 측정하고 기록 관리하는 '디지털 탄소 패스포트'다. 도입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디지털 계측기 몇 대만 설치하더라도 자동으로 정확한 데이터를 측정하고 기록할 수 있다.이를 탄소 패스포트와 연결해 탄소 배출량 데이터를 필요시 상호 공유하면 된다.
'디지털 탄소 패스포트'는 제품 생산 프로세스 전 주기를 포괄하며 자연스럽게 디지털 트윈 기반의 넷제로 플랫폼으로 확장된다. 공급망간 민감 정보가 클라우드 기반의 중립적인 데이터 교환 플랫폼을 통해 교환되기 때문에 기업 참여도 높아진다. 공유되는 탄소 데이터가 늘면 제조 공정 효율화나 탄소 저감 장치 개발, 혹은 효과적 에너지 관리를 위한 생성형 AI 도입 등 여러 방면에서의 디지털 제조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
모두가 주지하듯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온난화 시대를 넘어 가열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중국 노자의 도덕경에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라는 말씀이 있다. 과거에 일구어 놓은 업적과 성공에 머무르지 말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탄소 중립은 산업화로 촉발된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자 지속가능한 성장의 바로미터가 됐다. 바로 지금, 전 산업이 탄소 중립의 생존 여권 '디지털 탄소 패스포트'를 챙겨야 하는 이유다.
방수인 SK(주)C&C Digital ESG 그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