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중국 업체가 운영하는 국내 언론사 위장 웹사이트 30여곳을 잡아냈으나, 한 달 넘게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웹사이트가 새해 선거를 앞두고 여론 조성에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 주무 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2일 국정원과 정보보호업계 등에 따르면, 국정원이 지난달 지목한 국내 언론사 위장 웹사이트 38개가 여전히 운영 중이다.
앞서 국정원은 지난달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중국 언론홍보업체 '하이마이'와 '하이준'이 정상적인 국내 언론사 사이트로 위장해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웹사이트는 “한국, 미 글로벌 '민주주의 정상회의' 참석, 득보다 실이 많다”, “중국이 코로나19 공조를 지원하고 있다”, “주한미군 세균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깜깜이 실험'” 등 친중·반미 콘텐츠를 유포해 국내 여론 조성에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국정원은 해당 사이트에 게시된 콘텐츠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되는 등 배후 세력의 사이버 영향력 활동 가능성이 있어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불법·유해 사이트 차단 권한을 가진 방심위에 관련 자료를 전달했으나 여전히 조치는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그 사이 국정원은 국내 언론사를 위장한 중국 웹사이트 178개를 추가로 확인했다. 200여개가 넘는 위장 사이트가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것인데, 아직 찾아내지 못한 웹사이트도 상당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새해 4월 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해당 사이트가 여론 조성에 악용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발표한 '2024년 사이버 보안 위협 전망'에서 새해 총선 등 정치 이벤트를 악용해 사회 혼란을 노리는 세력의 사이버 위협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다.
더욱이 해당 사이트는 국내 언론사 기사를 무단으로 게재하고 사이사이에 친중·반미 콘텐츠 등을 끼워 넣은 방식으로 운영한다. 저작권을 침해하는 불법 사이트인 만큼 방심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민간 독립 기구인 방심위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통위법)에 따라 언론사 위장 사이트와 같은 온라인 사이트의 불법·유해정보를 심의할 권한을 갖고 있어서다.
방심위 관계자는 “언론사 위장 사이트 관련 직접적인 신고를 받지 않았기에,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직접 심의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방통위는 지난 2021년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n번방 방지법' 제정 당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마련한 바 있다. 중국의 언론사 위장 사이트 역시 방통위가 관련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데도 안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방통위는 “국정원이 국가안보 위협 등 문제가 있고 삭제차단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방통위를 통해 방심위 심의를 거쳐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에게 해외서버 차단을 방심위가 요청할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 해외사이트의 문제 여부는 국정원이 모니터링하고 판단하는 일이므로 국정원 소관으로 보는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조재학 기자 2jh@etnews.com,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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