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빅테크 기업의 공습에 맞설 거대 플랫폼 기업을 보유하지 못한 유럽연합은 미·중 빅테크에 대한 포괄적 사전규제를 위한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시행해 구글·애플·아마존·페이스북·틱톡 등에 강력한 규제를 시작했다. 유럽연합과 비슷한 위치에 놓인 일본도 유사한 규제 방안을 준비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9일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을 발표했다. 국내 대형 플랫폼 기업은 정부가 시장의 '공정함'에만 매몰돼 미·중 빅테크 기업에 국내 시장의 빗장을 풀어주는 '글로벌 호구'를 자처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는 스타트업과 소상공인을 배려한 공정경쟁을 위한 규제를 제시했다 하지만, 글로벌 빅테크는 규제하지 못하면서 그들과 힘겹게 경쟁 중인 국내 대형 플랫폼 기업만 차별해 결국 국내 산업 경쟁력만 갉아먹을 것이라는 우려다.
2012년 대형마트에 월 이틀간의 의무휴업일을 지정했던 '유통산업발전법' 논란도 비슷했다. 목적은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의 상생이었지만, 국내 기업의 경쟁을 제한하며 글로벌 빅테크의 침공은 열어둔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외풍에 대응하고 다른 한편 내부 시장의 균형과 상생도 함께 도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쟁력있는 자국 플랫폼 기업을 보유하지 못한 유럽연합과 일본이 강력한 플랫폼 규제에 나선 것은 선택의 여지없는 합리적 선택이다.
반면, 한국은 아직 글로벌 경쟁력은 부족하지만, 자국 시장은 지켜내는 토종 플랫폼의 내수 경쟁력은 확보된,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독특한 상황이다. 토종 플랫폼 기업의 무분별한 독과점 횡포가 국내 스타트업과 소상공인을 피폐화해왔다는 비평도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몰아치는 외세에 대응하는 한편 자국내 시장의 공정한 경쟁도 함께 보장할 현명한 선택은 과연 가능한가? 세계 최강의 거란 철갑 기병과 26년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번영과 동아시아의 평화시대를 이룩한 고려의 선택에서 그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목종을 폐위한 강조가 세계 최강 철갑기병에 굴복하고, 백성을 수탈하며 그 댓가로 평화를 구걸했다면 고려왕에 오를 수 있었으나 거란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는 길을 택했다. 세계 최강 철갑기병과 맞설 수 있는 군대는 왕위도 폐위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진 위협적 존재다. 하지만, 내부 위협만을 걱정해 큰 힘들을 다 제거하면 외세의 공격을 막아낼 길 또한 없다.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이와 같다.
한국의 대기업이 국가적, 국민적 지지와 지원으로 성장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몰아주기 과정에서 발생한 독과점과 내수시장의 희생을 피할 수 없었다. 한국 대기업의 국가적 역할은 국제 경쟁력을 갖추어 철갑기병의 침략과 같은 외풍을 막아냄에 있는 것이다. 큰 힘을 남용해 내수시장을 문어발 확장으로 장악하고, 외풍에는 맞설 능력도 의지도 없고 중소기업 영역만 잠식한다면 왕위찬탈의 반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집중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충을 지지하고 지원해온 국민적 이유는 외풍에서 우리를 지켜주리라는 소망이다. 외풍에 맞서 지킬 의지가 없는 플랫폼 대기업의 독과점 시도를 지지하고 지원할 이유는 찾아보기 힘들다. 글로벌 선전을 기대한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