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예산 정국이 지났다. 예산 심사 과정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됐던 연구개발(R&D) 예산은 정부안 대비 6000억원을 증액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R&D 예산 삭감의 단초가 됐던 '카르텔'의 구체적 실체는 지목하지 못한채 유야무야 이번 사태가 마무리됐다.
새해 정부 R&D 예산은 올해 대비 4조6000억원 삭감된채 확정됐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증액된 금액으로 그간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불식시키기엔 턱 없이 부족하단 목소리가 여전하다.
이번에 증액된 6000억원 가운데 중소기업 R&D에 배정된 금액은 약 700억원에 불과하다. 내년도 계속과제 수행을 위해 필요한 예산 부족액 3164억원의 절반에도 채 못 미친다. 당초 사업 정리를 위해 배정됐던 1~2개월분 예산에서 고작 3~4개월 수준의 사업비가 추가로 배정되는데 그쳤다. 새해 종료되는 사업으로 범위를 넓히면 여유는 더욱 부족하다. 계속·종료사업을 당초 협약대로 온전히 마무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국회 예산 증액 심사 과정에서도 삭감된 예산 전액이 복원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곤 했다. 일괄 삭감한 예산을 원점으로 되돌리기에는 마땅한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중소기업 R&D가 카르텔, 나눠먹기 R&D로 지목된 상황에서,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반증도 마땅히 내놓지 못했다. 3개월치를 복원하건 그 이상을 복원하건 어차피 당초 협약을 지키지 못할 것은 분명했던 만큼 내부에서는 삭감된 예산을 받아들게 될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국가 R&D를 수행하고 있는 중소기업 다수는 아직도 이 사실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조만간 R&D 주관기관으로부터 계속·종료과제 협약 변경 요구서가 날아올 것이다. 세부안은 나와봐야 알 수 있겠지만 중소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주는 내용이리라는 사실은 안봐도 뻔하다. 정책자금 지원이나 신규 사업 개시 시점 연기 등을 통해 급한 불을 끄기에는 대상 기업의 수가 워낙 많다. 피해를 입은 기업의 행정소송은 물론이고, 인력 감축 등 각종 부작용이 연이어 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국가 R&D의 신뢰성 하락도 불가피하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운 꼴이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외양간이라도 잘 고치는 것이다. 부정수급 문제 해결부터 경쟁력이 떨어지는 R&D 기획의 보완, 실질적인 사업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소기업 R&D로 구조혁신에 집중해야 한다. 나눠먹기식 R&D라는 꼬리표를 하루 빨리 떼는게 우선이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