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전 세계에 녹아들고 있는 인공지능(AI) 역시 마찬가지다. 어두운 면에 부각된 AI는 'AI 포비아'를 야기한다. 인간이 AI를 극복할 수 없다는 공포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일자리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상당 부분 대체할 것이란 우려는 일부 현실로 다가왔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인력 감축 행보도 생성형 AI 기술 영향으로 분석된다. 대표적인 AI의 그림자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반복돼 왔다. 1차·2차·3차·4차 산업 혁명 시기 때마다 인간의 일자리는 기계 장비·소프트웨어(SW)·로봇 등 소위 말하는 '기술(테크)'에 위협 받아왔다. 실제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있었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기도 한다. 기술은 인간의 일자리를 탈취한다기보다 '전환'시킨다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는 좀 더 설득력있다.
AI도 마찬가지다. 지구를 강타한 이 기술은 인간 일자리에 대한 패러다임을 새롭게 전환시키고 있다. 단순 반복 작업을 AI가 대체하면서 상당 부분 인간의 어려움을 '보완'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직업과 산업은 부분적으로만 자동화에 노출되기 때문에 AI로 대체되기보다는 보완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 바 있다. AI가 인간의 직업을 뺏는 것보다 업무 강도와 자율성 등 일자리 질과 형태에 변화를 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많은 기업에서는 AI로 비효율적인 업무를 대체하면서 확보한 시간과 인력을 보다 '창의적인 일'에 투입하길 원한다.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자동화(EDA) 툴 및 설계자산(IP) 기업 시높시스 창업자 아트 드 제우스는 “개발 엔지니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못하는 상황에서 AI를 접목하면 개발 시간을 단축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며 “오히려 여유가 생기면 보다 창의적인 부분에 R&D를 투자할 수 있어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고 밝혔다.
◇돌봄 AI,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
AI의 '빛'은 우리가 미처 밝히지 못한 사각지대도 조명할 수 있다. 세계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지만 한계는 있다. 장애인이나 노인, 아이 그리고 여성 등에 차별적이지 않고 보편적인 세상을 구현하려는 과제에 AI는 좋은 해답이 될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에 AI 기술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AI 기술이 케어 서비스와 융합, 'AI 케어'로 탈바꿈한 것이다. 대표 사례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AI 케어서비스다. SK텔레콤이 지난 2021년 대구시 청암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 처음 구축한 것으로,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 완화를 지원하고 있다.
도전적 행동은 자해·타해 등 생활에 어려움을 주는 발달장애인의 이상 행동이다. 매번 도전적 행동 양상을 기록하고 분석하는데 많은 인력이 투입됐지만, AI로 핵심 행동 관찰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폐쇄회로카메라(CCTV) 등으로 관찰부터 데이터 기록, 통계까지 AI가 담당하게 돼 전문 인력은 발달장애인 지원 계획 수립과 수행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됐다.
AI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스타트업·벤처의 행보도 잇따른다. 소보로(소리를보는통로)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음성 언어를 문자화하는 AI 기술을 개발했다. 음성을 실시간으로 문자로 전환, 자막을 읽듯이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국립특수교육원,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청음복지관 등과 협약을 맺고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투아트는 시각보조 음성 안내 애플리케이션 설리번플러스를 개발했다. 딥러닝 기반 이미지 캡셔닝 기술을 활용,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이미지를 시각장애인에게 음성으로 안내해주는 서비스다.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정부 주도 AI 기술 개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회적 약자 지원의 책임 주체다. 공공에서도 AI로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기술을 개발하고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강화하기 위해 AI 기술을 꺼내들었다. 교통약자 이동지원 차량 수요자가 빠른 시간 안에 차량을 배차 받을 수 있도록 AI로 분석을 시도했다. 약 2만명의 교통 약자가 등록된 대전광역시를 모델로 삼았다. 대전시에는 교통 약자 이동지원 차량이 96대 운행되고 있고, 작년 한해 운행 횟수는 110만회다.
기존에는 운전자가 임의로 차고지부터 배차 신청지까지 경로를 운행해왔다. 배차 신청 후 평균 22분, 최대 51분 후에 탑승할 수 있는 어려움이 있었다. 행정안전부 통합데이터분석센터와 대전교통공사는 AI 분석으로 새로운 이동 경로를 확보하고, 기존 대비 이동 거리를 41%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경찰청은 '실종 아동 등 신원 확인을 위한 복합인지 기술 개발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연구 총괄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세대, 에스큐아이소프트 등이 참여한다. 어린이, 치매 환자, 지적장애인 등 실종자 이동 경로를 예측해 위치를 추적하고, 장기 실종자는 기존 사진을 기반으로 현재 얼굴을 추정하는 AI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과기부에 따르면 작년 기준 실종 아동수는 2만명, 치매 환자와 지적장애인 실종자 수는 1만9000명에 이른다.
일각에서는 AI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AI와 가상현실(VR) 등 작품으로 AI의 차별과 편견 가능성을 메시지로 던지는 스테파니 딘킨스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채용 과정에서 생성형 AI가 인종·성차별 가능성이 제기돼고, 특정 편견을 확대 재생산한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AI 위험성만큼이나 사회적 약자를 지원할 수 있는 '보완'과 인간의 동반자로서의 AI 기능과 역할에 대한 끊임 없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