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은 반도체 업계 겨울이었다. 스마트폰·PC·서버 등 전방 산업 위축으로 반도체 수요가 크게 줄었다. 반도체 제조사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시장의 성장과 침체가 반복되는 '반도체 사이클'은 더욱 짧아졌고 깊어졌다.
그나마 숨통을 돌릴 수 있었던 건 인공지능(AI) 덕분이다. AI 반도체 칩이 대표적이다. AI 반도체에 필수 적용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도 마찬가지다. 메모리 시장이 바닥을 치고 회복세로 전환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반도체 기업은 AI로 버틸 수 있었지만, 그 수혜의 저변은 넓지 않다. AI 반도체 칩에서는 엔비디아가, HBM은 SK하이닉스 정도만 손꼽힌다. 두 기업 역시 생산 능력 제한으로 지난해 폭발적인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AI 반도체 칩에는 인텔과 AMD 뿐 아니라 정보기술(IT) 빅테크 기업도 자체 AI 반도체 칩 개발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는 HBM 분야에서 SK하이닉스를 맹추격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미국 마이크론도 참전을 예고했다.
CES 2024에서도 반도체 분야 화두는 HBM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대표 메모리 기업이 모두 차세대 HBM 'HBM3E'를 전면에 내세운다. 올 한해 '진검승부'가 예상되는 HBM 대전의 첫 포문이 CES에서 열린다.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된다. HBM은 기존 사전 대량 생산 체제와 달리, 수주형 사업에 가깝다. HBM 공급 업체와 수요 기업(AI 반도체 기업) 간 합종연횡도 불가피하다. CES는 이같은 밀월 관계를 다지기 위한 네트워크의 장이자 기회다.
CES 2024에서 본격화하는 HBM 경쟁은 반도체 시장에는 긍정적이다. 다수의 플레이어가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고객의 선택권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공급망 다변화로 AI 반도체와 HBM의 공급 부족(숏티지) 역시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D램과 낸드 시장 회복이 더딘 가운데 HBM의 성장은 산업 전반에 활기를 불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CES가 반도체 시장 회복의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라스베이거스(미국)=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