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의 연구개발(R&D) 수행기관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은 최근 '협약변경팀'을 신설했다. 3000개가 넘는 중소기업의 R&D 협약을 변경해야 해 이를 전담할 팀이 필요해진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지난해보다 최대 50% 삭감된 R&D 협약 변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연구비를 받을 수 없다. 올해 R&D 예산이 줄면서 나온 어쩔 수 없는 조치다.
이에 기업들의 불만이 거세고 행정소송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제기됐던 우려가 실제 현장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중기부의 올해 R&D 예산은 1조4097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0% 이상 줄었다. 전체 예산은 삭감됐지만, 딥테크 분야 예산은 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기술협력개발, 소재·부품·장비 전략협력기술개발 등 다년간 사업을 진행하는 '계속과제'는 6개월치 예산만 편성된 경우가 허다하다. 줄 돈이 없으니 협약을 변경해야 하고,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연구비를 지급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셈이다.
중기부는 연구개발기관과 기업 간 협의를 거쳐 △협약변경 수용 △중단 신청 △불응 등을 판단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예산이 줄어 사업이 변경 또는 중단되는 경우에는 제재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문제는 중소기업이 협약 변경을 수용하지 않으면 연구비를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자체 R&D 여력이 충분치 않은 중소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협약 변경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무리하게 R&D 예산을 삭감만 하고 후속 작업에 대한 대비가 부실했다는 점이 현장에서 확인된 셈이다. 지난해 R&D 예산의 대폭 삭감 이후 과기계와 산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보니, 대통령까지 나서 R&D 투자 확대 및 예산 복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비정상적인 R&D 수행이 다반사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기업들의 불만과 불안감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급기야 만들지 않아도 될 팀을 신설해 또 다른 행정력 낭비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특히 내년에는 R&D 예산이 늘어날 것이 뻔한데 1년이라는 시간만 허송하는 헛수고가 이어질 가능성도 농후해 보인다.
줄어든 예산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혼란은 최소화해야 한다. R&D 현장의 불안은 줄이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다양한 후속 대책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