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2의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발굴하기 위해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육성법을 마련한다. 급성장하는 글로벌 CDMO 시장 초격차 로드맵 구상에 착수했다는 분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바이오의약품 CDMO 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별 규제 동향과 지원 정책 등 조사를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하반기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육성법 마련에 착수, 내년에 입법 절차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식약처는 우선 오는 7월까지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을 대상으로 바이오의약품 CDMO 업체 현황과 산업지원 정책, 제도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 발굴과 함께 필요할 경우 특별법 제정 내지는 기존 법률 개정 작업까지 진행한다.
CDMO는 단순히 의약품을 위탁생산(CMO)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후보물질 개발, 생산공정, 임상, 상용화 등 개발 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제조뿐 아니라 개발 역량까지 확보해야 하는 만큼 진입 장벽이 존재하고, 글로벌 수준 도약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식약처는 시장 성장 잠재력과 우리 기업 성공 가능성을 고려할 때 관련 법안까지 마련해 육성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CDMO 시장은 지난해 약 193억달러(약 25조5000억원)에서 2025년 약 253억달러(약 33조8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연평균 20%에 이르는 고속 성장을 거듭하는 영역이다. 특히 글로벌 의약품 개발 업체 약 70%가 직접 생산보다는 CMO 혹은 CDMO를 이용하고 있고, 이 경향은 갈수록 짙어진다는 점에서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평가다.
이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성공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국가 차원의 주도권 확보 기대감을 높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CDMO 시장에서 선두권에 올라 있고, 셀트리온과 SK팜테코, 롯데바이오로직스, 동구바이오제약 등도 사업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라는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국가 차원의 생태계를 육성, 차기 주자 발굴에 정부가 힘을 보태겠다는 의도다.
식약처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보유한 바이오 인력과 제조 노하우, 선행 기업 성공 사례 등을 고려할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영역”이라며 “시장 조사를 거쳐 필요시 내년에는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산업 육성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바이오의약품 CDMO 육성법을 비롯해 제도·정책이 마련될 경우 국내에서는 첫 사례가 된다. 그동안 바이오산업은 큰 틀에서 세제 혜택 등 지원을 받았지만, CDMO 산업에 특화된 제도나 정책은 없었다.
실행 주체가 식약처라는 점도 눈여겨 봐야한다. 산업 육성을 책임지던 산업통상자원부나 보건복지부가 아닌 식약처가 나선다는 점은 '규제 과학' 관점에서 육성법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막대한 연구개발(R&D), 설비 투자를 동반한 정책이 아닌 CDMO 부문의 수출제조업 도입, 바이오의약품원료물질 GMP 인증, 글로벌 규제기관 국제협력 등 규제 지원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바이오의약품 CDMO 기업 대부분이 대기업 혹은 중견기업인 만큼 예산 지원보다는 규제 합리화나 세제혜택 등을 명문화해 수출 기업으로 성장을 돕는 게 필요하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CDMO 시장도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각종 규제를 합리화하고, 새로운 영역의 선제 진출이 필요하다”면서 “정부 육성 정책도 마이크로바이옴 등 CDMO 시장에서 떠오르는 물질을 중심으로 인허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