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바이오·제약 시장 진출 선언이 이어지면서 업황 개선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2022년부터 혹한기에 접어든 바이오·제약 시장이 대기업 참여 확대에 따른 자금 수혈과 추가 인수합병(M&A)으로 인한 산업 재편 기대를 모으면서 올해 도약 기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OCI그룹-한미약품그룹, 오리온-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합병 이후 추가 M&A에 업계 관심이 집중된다. 대기업·중견기업들은 이미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성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다 수년간 '투자 가뭄'에 시달렸던 바이오·제약 업체들이 스스로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 추가 M&A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LG전자를 비롯해 한화, GS, HD현대, 카카오 등 대기업들은 바이오·제약·디지털헬스케어 등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거나 M&A를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이미 바이오·제약 관련 계열사를 보유한 삼성과 SK, 롯데, CJ 등도 추가 투자를 꾸준히 모색해 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금력만 있다면 올해 바이오·제약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인수할 적기라고 보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함께 국내 바이오 시장 '거품론'이 대두되면서 2년 이상 투자 혹한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제약 업계 자금난이 장기화되면서 매물이 쏟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삼일회계법인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접수된 바이오 기업 파산은 2013~2021년 연평균 10건에 불과했지만 2022년 20건, 2023년 41건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바이오 분야 신규 벤처투자 역시 5년 만에 1조원 이하로 떨어지는 등 글로벌 전역에서 업계 자금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여기에 치솟던 바이오 기업 가치가 점차 낮아지는 점도 대기업에게 매력적이다. 바이오·제약 75개 종목으로 구성된 KRX 헬스케어지수 시가총액은 2020년 말 258억원에서 지난해 180조원으로 30%나 감소했다. 매물 가치가 역대급으로 하락하면서 매수 타이밍이 왔다는 것이다.
임정희 인터베스트 부사장은 “올해도 바이오·제약 분야 투자 심리는 크게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VC를 통한 투자보다는 M&A와 같은 직접 투자가 활기를 띨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대기업의 바이오·제약 시장 진출과 M&A 확대는 새로운 시장 질서를 정립하는 한편 자연스럽게 옥석까지 가려주는 일종의 '교통정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제2 바이오 붐'을 타고 바이오·제약 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거품론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단기간에 기업 가치를 높이고 경영권을 매각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벤처투자사 투자 심리를 더 얼어붙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최근 2년간 투자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옥석이 가려지는 교통정리가 되고 있다”면서 “결국 혹독한 환경에서 경쟁력 있는 업체만 살아남아 투자 혹은 M&A 등으로 재도약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