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하버드 경영대학원 연구진이 흥미로운 실험을 하나 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전체 컨설턴트의 약 7%에 해당하는 758명을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나눠 GPT-4 도입이 업무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것이다.
결과는 경이로웠다. 생성형 인공지능(AI)를 활용한 컨설턴트는 평균 대비 12% 더 많은 업무를 처리했고, 업무 처리 속도는 25% 더 빨랐으며, 업무의 질은 무려 40% 더 높게 측정됐다. 고도의 논리력을 요구하는 전략컨설팅 업무에 범용성 AI모델을 활용하는 것만으로 가시적인 생산성 증대 효과를 확인한 것이다.
이처럼 AI 기술은 이미 개념 증명(PoC)의 단계를 지났다. 필자가 근무했던 골드만삭스는 AI가 전기모터와 개인컴퓨터의 발명에 비견되는 '생산성 붐을' 일으킬 것으로 예측한다. 특히 법률 산업은 전체 업무의 44%가 자동화될 것으로 분석했다.
대체율이 유난히 높은 이유는 주니어 변호사 시간의 상당 부분이 자료 검색·문서 검토·서면 작성 등에 쓰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법률 산업이 AI 기술의 핵심적인 테스팅 베드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년 간 글로벌 로펌들은 앞다투어 전사적인 AI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해왔다. 세계 3위 로펌 앨런앤드오버리(Allen&Overy)는 자사 소속 변호사 3500명이 업무에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기적으로 AI는 강력한 수익성 개선 수단이다. 직원 인당 생산성이 늘어나면 매출 상승과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AI 기술의 보편화로 경쟁이 심화돼 생산성 낮은 로펌은 시장에서 도태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이는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관망이 아닌 빠른 실행이 중요하다. AI 전략의 첫 번째 단추는 AI 서비스를 도입할 영역을 정하는 것이다. 최근 필자가 주요 로펌, 대기업, 그리고 공공기관의 경영진 혹은 AI 실무진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요청은 '잠자는 데이터'를 활용한 AI챗봇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법규 제·개정 내역과 심·결례, 가이드라인, 의견서와 보고서 등은 어딘가에 데이터로 존재하지만 찾고 활용하기 어렵다. 반면 AI챗봇에 데이터를 반영하면 자연어 질문으로 답변과 출처를 곧바로 검색해서 내부 리서치, 민원 처리, 서면 작성 등 다양한 목적에 활용할 수 있다.
두 번째 단추는 AI 서비스를 살 것인지 아니면 직접 만들 것인지(buy or build) 결정하는 것이다. 국내외 AI 인재 품귀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커스텀 모델 개발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비용이 발생하기에 보통은 구매를 결정한다.
최근 들어서는 전문 분야에 특화된 AI 모델이 등장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AI 공급사가 목적에 맞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법률 영역에서는 환각 현상이 없고 국내법과 한국어에 특화된 AI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마지막 단추는 높아진 'AI 리터러시(literacy)'를 통해 향후의 확장 전략까지 세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AI 챗봇을 사용하면서 검색한 자료를 바탕으로 보고서 작성까지 자동화하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AI 기술의 잠재력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며 적용 범위를 확장해 나가면서 시장에서 초격차를 확보해야 한다. 성공적인 AI 전략의 핵심은 실행력이고, 실행력의 본질은 속도다.
최호준 로앤굿 부대표 hojun.choi@lawandgoo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