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 완화 방침을 밝히면서 유통업계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그간 대형마트는 새벽 시간대 배송이 막혀 '반쪽' 서비스만 제공해야 했다. 규제가 완화될 경우 전국에 구축 할인점·기업형슈퍼마켓(SSM)을 24시간 거점 물류 센터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기대감이 커진 대형마트와 달리 e커머스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물류, 콜드체인 시스템 등 추가적인 인프라 구축 비용과 시장 점유율을 고려했을 때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온·오프라인 유통 배송 경쟁이 재점화될 지 이목이 쏠린다.
정부는 지난 22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통해 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합리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새벽 시간대 배송 제한과 공휴일 의무 휴업 족쇄를 풀겠다는 것이 골자다.
현재 대형마트는 새벽 시간대와 의무 휴업일 온라인 배송이 금지돼 있다. 지난 2012년 법제처가 '오프라인 점포를 물류기지로 활용하는 것은 점포 개방과 같다'는 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매일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할 수 없으며 매월 2회 의무 휴업일을 가진다. 기존 오프라인 영업 규제가 온라인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이런 허들 때문에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반쪽짜리 배송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별도 물류센터를 구축해 새벽배송에 뛰어든 롯데와 GS리테일은 비용 문제로 일찌감치 철수했다. 이마트는 SSG닷컴·G마켓 등 e커머스 계열사를 통해 새벽배송을 운영 중이지만 수도권 위주로만 운영 중이다. 홈플러스는 새벽배송을 포기한 채 퀵커머스 '1시간 배송', '저녁 배송' 등을 운영했다.
새벽배송 길이 열릴 경우 대형마트는 지리적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전국 단위로 운영 중인 오프라인 점포 인프라를 물류 거점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모두 할인점은 물론 SSM 매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더욱 촘촘한 물류 네트워크 구축이 가능하다. 비용 효율 문제로 수도권과 주요 거점 도시에만 새벽배송을 제공하는 e커머스에 비해 넓은 온라인 배송 권역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새벽배송이 제공되지 않는 중소 도시 소비자들의 서비스 수요는 높은 편이다. 지난해 11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중소 도시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새벽배송에 대한 이용현황·이용의향' 조사 결과 응답자 84%가 이용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 의향이 있는 이유로는 △장보기가 편리해질 것 같아서(44.3%) △긴급 시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34.0%) △이용할 수 있는 선택 폭이 넓어지므로(15.0%) 등을 들었다.
새벽배송 주요 구매 품목이 식품이라는 점도 대형마트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새벽 배송 구매 품목에서 신선식품(81.4%), 가공·냉장·냉동식품(75.4%)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품질과 신뢰도가 중요시되는 신선식품은 여전히 대형마트가 강점을 가진 상품군으로 꼽힌다.
법 개정 등 사업 불확실성 높고
e커머스 선점시장 공략도 고민
일각에서는 대형마트가 섣불리 새벽배송 서비스를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물류·콜드체인 등 새벽배송을 위한 추가 투자 비용이 적지 않을 뿐더러 소비자들도 e커머스 새벽배송 서비스 이용이 익숙해졌다는 이유에서다. 쿠팡·컬리·오아시스마켓 등 주요 e커머스가 수년간 쌓아온 새벽배송 노하우도 무시할 수 없다.
법안 개정 시점도 불투명하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3년째 국회 상임위에 계류돼있는 상태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1월 임시 국회가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통과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대형마트 새해 사업 전략 구상에서도 배제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대형마트는 고정 고객층이 탄탄하고 신선식품에 강점을 가졌기 때문에 새벽배송 사업 경쟁력이 충분하다”며 “다만 모든 매장에 새벽배송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시간이 필요한 만큼 핵심 상권 위주로 실험해보면서 서비스를 확대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민경하 기자 maxk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