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발표에 의사단체들의 집단행동이 가시화되며 본격적인 투쟁을 예고했다. 정부는 개정된 의료법에 따라 최대 '면허 취소'카드까지 꺼내 들며 초반부터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대통령실도 의사단체에 자제를 요청하며, 단체행동은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양측의 타협 없는 강경 입장에 전운이 고조된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연휴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집단행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15일 전국 곳곳에서 궐기대회를 열고, 17일 서울에서 전국 의사대표자회의를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집단행동을 이끌 비대위원장은 김택우 강원도의사회장이 맡았다.
전공의단체 역시 이날 온라인으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집단행동 여부를 포함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 의료기관에서 주요 업무를 담당하는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가세할 경우 의료현장의 혼란은 피할 수 없으리라는 우려가 크다.
실제 지난 5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수련병원 140여곳의 전공의 1만여명을 대상으로 '의대 증원시 단체 행동에 참여하겠느냐'를 설문한 결과 88.2%가 참여 의사를 보였다고 밝힌 바 있다. '빅5'(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 병원 전공의들은 자체 설문조사를 통해 집단행동에 참여하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의료계는 단체 행동 예고와 함께 연일 정부를 향한 날 선 발언도 이어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의대 증원에 지속해서 반대 의견을 피력하던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고 일축한 뒤 2000년 의약분업 당시의 혼란이 재현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그러면서 “(정부가) 의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이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발상이고, 문제는 그 재앙적 결과가 국민의 몫이라는 점”이라며 “재앙은 시작됐다”고 밝혔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알리며 “더 이상 의사들을 범죄자 소탕하듯이 강력하고 단호하게 처벌하려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더 이상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응급의료 현장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이 같은 강경 대응이 '일부 움직임'이라고 보고,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꾸려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이다. 개정된 의료법 등에 따라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면허 취소' 카드까지 꺼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의료법'에 따르면 집단으로 진료를 거부하면 업무 개시를 명령할 수 있다. 여기에 따르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자격 정지뿐 아니라 3년 이하의 징역형도 받을 수 있다. 특히 개정된 의료법은 어떤 범죄든 '금고 이상의 실형·선고유예·집행유예'를 선고받았을 때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했다.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하면 의사뿐 아니라 그들이 몸담은 의료기관도 1년 범위에서 영업이 정지되거나 개설 취소, 폐쇄에 처할 수 있다. 의료법 외에도 응급의료법, 공정거래법, 형법(업무방해죄) 등으로도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대통령실도 의사들의 단체행동 자제를 요청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의대 정원에 관해서는 오래전부터 논의가 있었음에도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 “의사들의 단체 행동에 대해 명분이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책 실행 타이밍을 여러 가지 이유로 번번이 놓쳤다”면서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강경 대응을 예고하면서도 의료계뿐 아니라 국민을 대상으로 정책 정당성을 꾸준히 설득하고 있다.
지난 11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복지부 공식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에 '전공의들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조 장관은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현장에서 많은 반대와 우려가 있는 점도 잘 안다”면서 “그러나 병원을 지속 가능한 일터로 만들고자 하는 정부의 진심은 의심하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어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정원 확대는 해묵은 보건의료 문제를 풀어나가고, 전공의들이 과중한 업무 때문에 오히려 수련에 집중하지 못하는 체계를 개선해 수련 기간 본인의 역량과 자질을 더 잘 갈고닦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장관은 또 “정부는 지역·필수의료 위기를 극복하고, 의료체계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이행할 것”이라며 “현장에서 가시적인 변화를 빠르게 이루어내기 위해 의료사고 안전망 등 정책 추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