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본딩' 기술 주도권을 쥐려는 반도체 장비사들 간 합종연횡이 시작됐다. 상호 보완을 통한 기술 완성을 위해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반도체 전(前)공정과 후(後)공정 기업간 동맹결성이 성사되는 양상이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인공지능(AI) 시대에 떠오르고 있는 첨단 패키징 기술로, 미래 핵심 성장동력이지만 상용화가 극히 드물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적 협력이 추진되고 있다. 대표 협업 사례로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와 베시 △ASMPT와 EV그룹(EVG)이 있으며, △도쿄일렉트론(TEL)과 시바우라 메카트로닉스 △한화정밀기계과 제우스 등도 협력을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반도체(다이)와 반도체, 혹은 반도체와 웨이퍼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이다. 기존 반도체 연결에 필요 했던 소재(범프)를 없애 신호 전송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데이터 처리량을 대폭 확대할 수 있어 AI 반도체 구현에 필수로 손꼽힌다.
시스템 반도체,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하이브리드 본딩이 필요로 한 곳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이 기술은 난도가 높아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일부 공정에 적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 상용화 사례가 매우 적다.
미래 성장성과 가치 대비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기업이 없기 때문에 차세대 반도체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어플라이드와 베시는 세계적 반도체 장비사들의 연합이다. 어플라이드는 글로벌 최대 반도체 장비 회사며, 베시는 반도체 적층을 위한 접합, 즉 본딩 분야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확보한 회사라는 평가다.
ASMPT와 EVG는 2021년부터 협업을 시작했다. ASMPT는 SK하이닉스에 고대역폭메모리(HBM) 본딩 장비 납품 이력이 있다. EVG는 반도체 노광·웨이퍼 세정·본딩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기업 간 협업도 주목된다. 세계 4대 반도체 장비사 중 하나인 TEL은 반도체 패키징 기술을 가진 시바우라메카트로닉스와 손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TEL 측은 양사 간 협력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한화정밀기계와 제우스가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을 개발하며 협력 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리드 본딩을 중심으로 한 연합의 특징은 반도체 전공정과 후공정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후공정으로 분류된 반도체 패키징은 진입 장벽이 낮아 한 장비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지만 첨단 패키징으로 기술 진화가 이뤄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하이브리드 본딩처럼 미세 공정이 필요해지면서 전공정 기술과의 융합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전공정의 세정 기술을 통해 후공정에서 이물(파티클)을 최소화하는 시도가 협업의 핵심으로 손꼽힌다.
이같은 협업 기업 간 시장 주도권 다툼은 하이브리드 본딩 상용화에 따라 승부가 날 것으로 전망된다. 메모리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두 2026년 양산 목표인 HBM4에 하이브리드 본딩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양사의 HBM 등 메모리 시장 점유율이 워낙 높은 만큼 협력 장비사의 기술 채택 여부에 따라 결과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강사윤 한국마이크로전자및패키징학회장은 “첨단 패키징 기술이 부상하면서 전공정과 후공정이 상호 영향을 미치게 됐다”며 “첨단 기술 확보 여부에 따라 시장을 주도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의 상호 협력은 지속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